[군산=뉴시스]강경호 기자 = '평화통일론'을 주장하며 강연회를 열었다 간첩으로 내몰린 독립운동가가 세상을 떠난 지 58년만에 누명을 벗었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백상빈)는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특수반국가행위) 혐의로 기소된 고 송병채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19일 밝혔다.
사회대중당 창당준비 이리시당 조직위원장이었던 송씨는 지난 1961년 4월15일 전북 이리시(현 익산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시국강연회를 열고 향후 대한민국의 통일·반공법 문제에 대한 강연회를 연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송씨의 공소사실에 대해 판단한 곳은 5·16 군사정변 직후 '국가재건 비상조치법'에 따라 설치된 특별재판소인 '혁명재판소'였다.
혁명재판소는 송씨의 강연회 참석을 "북한괴뢰집단의 목적사항과 동일한, 또는 그 기본노선이 통일한 내용을 선전·선동해 반국가단체인 북한괴뢰집단의 활동을 찬양·동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혁명재판소는 송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송씨는 1968년 세상을 등졌지만, 남은 유족들이 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재심을 신청했다.
법원은 당시 시대적 상황과 배경, 증거 등을 살펴봤을 때 송씨가 북한의 활동을 찬양·동조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4·19 혁명 이후부터 국내에서 금기시됐던 평화통일론, 남북교류론 등은 정당·학계·사회단체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던 시점"이라며 "이승만 정권 붕괴 이후 설립된 장면 내각에서는 통일 문제에 대해 전 정권보다 유연한 태도를 표명한 바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 당시 강연회에서 있었던 '영세중립화통일론'은 당시 남북의 정치체제와는 전혀 다른 영세 중립국의 통일국가를 만들자는 것이지, 북한의 체제를 제창하거나 옹호한 것도 아니다"라며 "이같은 내용을 모두 종합하면 피고인의 행위는 표현의 자유의 속하는 것이고, 해당 행위를 했다는 것으로 북한을 찬양·동조했다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한편 송씨는 일제강점기 직전인 1909년에 출생해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고등학교 재학 당시 동맹휴학 및 3·1운동 10주년 기념 시위 등을 주도했다가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2005년 송씨의 이같은 독립운동 성과를 기리기 위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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