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 동화 원작…흰바위코뿔소와 펭귄의 여정 그려
상실과 아픔을 지나 연대와 성장의 모습 풀어내
동화적 서사·상상력 자극하는 무대로 울림 전해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길고 긴 밤 보내고 나면 길고 긴 밤 또 찾아오겠지. 살아남는 건 너무 힘들지만 포기할 수 없어. 너를 바다에 데려갈 날까지"(넘버 '살아남는 건')
지구상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은 서로를 의지하며 끝없이 걷는다.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푸른 지평선을 찾아서.
루리 작가의 동명 동화를 무대로 옮긴 뮤지컬 '긴긴밤'은 바다로 가는 여정을 통해 상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의 의미를 묻는다.
이야기는 펭귄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나는 펭귄이다. 나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이름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나의 아버지들이 가르쳐줬으니까."
펭귄은 그렇게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노든과 펭귄 치쿠, 윔보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노든은 인간에 의해 아내와 아이를 잃은 뒤 동물원으로 옮겨지지만, 그곳에서 자신을 위로해주던 친구 코뿔소 앙가부마저 또 인간에 의해 잃는 아픔을 겪는다.
그런 노든 앞에 치쿠가 나타난다. 치쿠는 윔보와 함께 버려진 알을 주워 품다가 전쟁으로 윔보를 떠나보냈다.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같은 상처를 가진 노든과 치쿠는 바다를 향해 함께 나아간다. 그러나 치쿠마저 세상을 떠나고, 노든은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과 함께 바다로 향한다.
죽음, 전쟁, 이별 등을 겪으며 노든에게는 악몽을 꿀까 봐 잠 못드는 긴긴밤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런 노든이 어린 펭귄을 지켜내며 다시 걸음을 내딛는 모습은 뭉클함을 자아낸다.
수영을 두려워하는 어린 펭귄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거나, "네가 얼마나 사랑받으며 태어났는지"를 일러주는 모습도 마음에 오래 남는 장면이다.
그런 아빠들의 보살핌 속에 당차고 씩씩하게 자라난 어린 펭귄도 관객들의 마음을 흔든다.
노든과 헤어져 홀로 바다를 찾아낸 어린 펭귄은 "파랗게 물든 지평선, 끝없이 펼쳐진 파란 물, 노든이 말했던 그대로야"라며 아빠를 떠올린다.
"저 바닷속을 걸어가면 또 기다릴 밤을 알아. 하지만 그곳에서 언젠가 또 만나게 될 내 삶, 가장 반짝이는 것"을 노래하는 장면은 긴 밤이 오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또렷하게 전한다.
그렇게 '긴긴밤'은 상실과 상처가 이어지는 긴긴밤에도 서로를 지켜내며 함께 걸어가는 삶의 의미를 짚는다. 어린 펭귄은 노든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했겠지만, 그건 노든 역시 마찬가지다.
동화를 원작으로 하지만, 아이들뿐 아니라 어떠한 이유로든 고통과 아픔의 긴긴밤을 지나봤을 어른들의 마음에도 충분히 가닿을 수 있는 작품이다.
소극장에서 구현되는 이야기는 거대하거나 화려한 세트 없이도 상상력 가득한 무대를 펼쳐낸다.
칸이 나뉜 무대 바닥의 LED 조명만으로 동물원, 사막, 호수 등 다양한 공간을 표현하고, 동물들은 분장 대신 코뿔과 가방, 뒷자락이 길게 떨어지는 셔츠, 긴 호스 등의 소품으로 관객의 상상 속에서 완성된다.
노든 역에 홍우진, 강정우, 이형훈이 출연하고 펭귄 역은 최주은, 설가은, 최은영, 임하윤이 연기한다. 코뿔소 앙가부와 펭귄 윔보는 박근식, 도유현, 펭귄 치쿠는 유동훈, 이규학이 맡았다.
공연은 다음 달 29일까지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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