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16세 미만 SNS 전면 차단 후 영국·스페인 등 입법 확산
한국도 논의 착수했지만 청소년 "전면 금지는 신중해야"
美서 '청소년 SNS 중독' 소송 진행…판결 따라 규제 속도 달라질 듯
[서울=뉴시스]윤정민 기자 = #. 설 연휴에 맞춰 가족을 데리고 반년 만에 고향을 찾은 50대 A씨. 제사를 마치고 온 가족이 다 같이 모인 자리인데, 고등학생 딸 B양은 떡국을 먹으면서도 한 손으로는 인스타그램 '릴스(숏폼)'를 넘기는 데 여념이 없다.
A씨는 딸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신데 스마트폰 내려놓고 가족과 대화하며 밥을 먹어야지"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딸은 또 시작이라는 듯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며 릴스를 보는 데 멈추지 않았다.
A씨가 거듭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라고 다그치자 딸은 "왜 자꾸 간섭하느냐"며 결국 수저를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를 지켜보던 A씨의 누나는 "소셜미디어라는 게 사람 버르장머리 없게 만드는 것 같다"며 "아이들한테는 아예 접속을 못 하게 막아버려야지, 저게 무슨 꼴이냐"며 혀를 찼다.
청소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과이용을 둘러싼 이런 풍경은 이제 한국만의 모습이 아니다. 세계 각국은 더 이상 SNS를 개인의 자율에만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청소년 SNS 이용 금지'라는 초강수를 두고 있다.
현재 청소년 SNS 이용 금지 규제를 시행하거나 추진 중인 국가는 호주, 말레이시아,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등 10여곳이다.
호주는 지난해 12월 세계 최초로 청소년 SNS 이용을 법적으로 금지한 국가다. 16세 미만 호주 국민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레드, 유튜브, 틱톡, 엑스 등 10곳의 SNS을 이용할 수 없다.
플랫폼 기업은 보호자 동의와 관계 없이 16세 미만 이용자를 차단해야 한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최대 4950만 호주 달러(약 483억원)의 벌금을 부과받는다. 이에 법 시행 후 한 달 동안 약 470만개의 계정(호주 정부 추산)이 비활성화됐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법 시행 당시 "우리 젊은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청소년 SNS 이용 금지법은)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부모에게 더 큰 안심을 전할 수 있다"며 입법 이유를 전했다.
스페인의 경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엮이며 화제를 낳았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지난 3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8차 세계정부정상회의(WGS)에서 16세 미만 SNS 전면 금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SNS에 대해 "중독, 학대, 음란물, 조작, 폭력이 판치는 공간"이라며 "우리는 더 이상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디지털 무법지대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혐오 등 부적절한 콘텐츠를 삭제하지 않은 플랫폼 기업에 형사 책임을 묻는 법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머스크는 엑스에서 산체스 총리 발언에 대해 "폭군이자 스페인 국민의 배신자", "진정한 파시스트 전체주의자"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SNS, '디지털 마약'인가"…규제 도입에 "뇌 발달 저해" vs "자율성 침해"
각국이 이처럼 강경책을 검토하는 이유는 SNS의 중독성과 정신 건강 영향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특히 숏폼 콘텐츠가 제공하는 즉각적인 도파민 보상이 청소년의 인지 능력을 저하시키고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입법 핵심 근거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23년 미 보건복지부는 청소년 SNS 사용과 정신 건강 간 상관관계를 경고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SNS를 이용하는 청소년의 우울·불안 위험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유의미하게 높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 역시 규제 도입을 고민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발표한 지난해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 2명 중 1명(46.7%)이 SNS 이용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숏폼 역시 이용 시간 조절에 어려움이 있다고 답한 청소년 비율은 42.2%로 유아, 성인, 60대보다 많다.
이러한 우려에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김종철 방미통위 위원장은 최근 한 간담회에서 청소년들을 초청해 SNS 과의존 문제와 영향, 건강한 이용을 위한 방안 등 의견을 나눴다.
이 자리에 참석한 청소년들은 전면 금지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확증편향, 자극적 콘텐츠 노출, 허위정보 확산 등 부작용을 인정하면서도 일괄적 차단 방식에 우려를 나타냈다.
한 고등학생은 "우회 가입이나 나이 속이기 등 문제가 더 가중될 가능성이 있다"며 규제 실효성을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호주 청소년은 레몬8, 요프, 커버스타 등 규제 대상에 오르지 않은 유사 SNS로 대거 이동하거나 가상 사설망(VPN)을 이용해 접속 위치를 해외로 조작하는 등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가고 있다.
이 학생은 또 "청소년 흡연이 완전 금지된 것은 흡연이 백해무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SNS는 분명 얻는 것이 있기에 금지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SNS로 또래와 소통하며 정서적 지지를 얻고 관심 분야 정보를 빠르게 접하는 등 긍정적 측면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올바른 사용법을 가르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정부도 신중론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방미통위 관계자는 "청소년 SNS 규제와 관련해 아직 구체적인 방침이 정해진 바 없다. 해외 입법 사례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나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美 법정 선 '청소년 SNS 중독'…글로벌 규제 분수령
이 가운데 주요 플랫폼 기업 소재지인 미국에서는 청소년 SNS 중독에 대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고등법원은 메타, 구글을 상대로 제기된 '청소년 SNS 중독' 소송 심리를 지난 9일부터 진행하고 있다.
원고 측은 무한 스크롤과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 등이 SNS 중독 매커니즘을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정적 영향을 알고 있는데도 기업이 수익 극대화를 위해 중독을 유발하도록 했다는 뜻이다.
아담 모세리 인스타그램 CEO는 지난 11일 증인으로 출석해 플랫폼의 중독적 설계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와 닐 모한 유튜브 CEO도 각각 18일, 19일에 출석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는데 모세리와 같은 입장을 낼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전역에서 수천건의 유사 소송이 대기 중인데 플랫폼 알고리즘이 청소년 중독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는 재판 결과가 나올 경우 글로벌 규제 도입 속도는 이전보다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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