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 독일, 영국에서만 얼굴 외상 환자가 약 28만 명에 달했다. 전쟁이 끝나고 고국에 복귀한 병사 중 팔과 다리 등을 잃은 병사는 영웅 취급을 받았지만, 눈과 턱 등이 심한 외상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병사는 거부감이나 혐오 대상이 됐다. 전쟁에서 똑같이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친 이들이지만 부상의 위치와 정도에 따라 바라보는 시선은 완전히 대비됐다.
오늘날의 성형수술은 미용의 목적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의술(醫術)의 탄생은 전장에서 눈, 코, 턱 등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이 전쟁 이후 다시 일상생활에 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에게 성형은 미용이 아닌 꼭 필요한 치유였다.
린지 피츠해리스의 '얼굴 만들기'(열린책들)은 '현대 성형 수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해럴드 길리스(1882~1960)를 중심으로, 성형외과의 탄생 역사를 다룬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얼굴 외상 병사들의 안면 재건에 힘쓴 외과 의사의 인생과 더불어 초기 성형 수술의 역사를 서술한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한 뉴질랜드 출신 의사 길리스는 서부 전선의 전투가 한창일 때 적십자사에 들어가 1915년 프랑스로 파견됐다. 당시 32세였던 그는 포탄, 파편, 저격 총탄으로 인한 끔찍한 얼굴 부상을 입은 남성들을 처음 마주했다. 이때도 성형 수술이 존재했지만, 의학은 부족함이 많았다. 코가 점막이 없어 쪼그라들거나 이식된 피부가 거부 반응을 보이거나 또 다른 감염병을 낳기도 했다. 이처럼 재건 수술을 해도 부상 부위에 결함이 있었고, 부상의 심각성에 따라 때로는 얼굴에 구멍이 남은 채 살아야 했다.
길리스는 성형 수술을 한 단계 더 높이 발전시켰다. 우선 병원 환경 개선부터 나섰다. 그는 병동에 거울을 금지했다. 새로 온 환자들이 손상된 자신의 얼굴을 접하고 충격하는 일을 방지하는 것이다. 또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 재건 수술 중 얼굴을 보고 받는 충격을 막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그는 전쟁 기간 중 기존 수술 기법을 개선하고, 상황에 맞게 변형시켜 완전히 '성형외과'를 탈바꿈했다.
현대 성형외과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은 그의 덕이다. 한편 저자는 길리스의 노고와 더불어 의술이 성공할 수 있도록 이를 뒷받침한 동료 의사와 간호사의 헌신, 또 심리적 외상과 고통을 이겨낸 환자들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공감언론 뉴시스 excusem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