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시집에서 '소설'을 논하다…'소설책'

기사등록 2026/01/02 14:07:10

정일근 신작 시집 '시 한편 읽을 시간'

[서울=뉴시스] '소설책' (사진=교유서가 제공) 2026.01.0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소설책(교유서가)=기혁 지음

"소설 속 시인처럼 분열의 안락에 취해본다." ('시인의 말' 중)

시집의 제목이 소설책이라니, 역설적인 이름부터 눈길을 끈다.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로 제33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기혁 시인의 신작이다.

표제작 '소설책'은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백지의 소설의 주인공과 이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독자의 시선을 기록했다.

"주인공은 앉아 있고 백지를 넘기던 독자는 문득 소설책에 붙들린 자신의 미래를 떠올려본다." ('소설책' 중)

총 3부로 구성된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는 '겹침(layered)'이다. 소설이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이를 구성하는 내면을 탐구하자는 제안이다. 우리 사회의 여러 정보가 서로 층위를 이루며 쌓여있고, 이를 포착해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이 시인의 역할이라는 의미다.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조강석 "비소설의 층위에서 사태와 시적 직관을, 미소설의 층위에서 정동을, 그리고 그 단층을 엮는 단성적 태도를 시에 품음으로써 이 레이어드 모노포니는 수평적 확장 대신 수직적 중층을 획득한다"고 설명했다.

1부 '비소설(非小說)'에서는 소설이 되지 못한 파편들을 관찰하고, 이를 시로 탄생시켰다. 특히 시 '바벨 아파트'에서는 점점 소설의 영감이 사라지는 현대 사회를 조명한다.

"상상력이 있던 자리에 자본이라는 이름이 내걸렸다 // (중략) 소설의 근거를 잃어가고 있었다" ('바벨 아파트' 중)

아울러 저자는 자본주의가 시의 형식을 어떻게 변주하고(2부 '조리 부조리 비조리 간편 조리'), 미처 문학으로 표현되지 못한 감정들(3부 '미소설(未小說)')을 포착한다.
[서울=뉴시스] '시 한 편 읽을 시간' (사진=난다 제공) 2026.01.0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시 한 편 읽을 시간(난다)=정일근 지음

"저는 2025년 10월 한 달 꼬박 시마(詩魔)와 동고동락하며 같이 보냈습니다.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살며 지치며 같이 바닷가를 산책했습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의 전부를 시마와 함께 썼습니다." ('정일근의 편지' 중)

1984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고, 한국일보 신춘문예(1985)를 통해 등단한 정길근의 15번째 시집이자, 2년 만의 신작이다.  지난해 10월 한 달간 시마와 싸우며 고민한 흔적들을 담았다. 다만 시인은 시마가 시를 만들어준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시마는 '언제나 시의 한 단어나 한 줄을 툭, 건네고는 사리지는' 존재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결국 오래된 사식과 시인의 시간들이다. 시인은 그 시간을 '애증의 시간'이라 부르며, 그 시간 동안 탄생한 62편의 시를 이번 시집에 담았다.

"독자에게 좋은 시의 술을 빚어 한잔 권해야지/시란 시인이 빚어 독자와 나눠 마시는 한준 술이라서/언어의 정미율 밝히며 써야지" ('시를 도정하듯' 중)

시집의 제목은 수록작 '밤 열한시 오십육분의 시'에서 따왔다. 늦은 밤까지, 심지어 꿈속까지 시와의 끈을 놓지 않았던 저자의 시를 향한 '진심'이 담겼다.

"이 얼마나 고마운 시간인가, 오늘이 끝나지 않은 것이//아직 기도할 시간 있는 것이//시 한 편 읽을 시간 남아 있는 것이," ('밤 열한시 오십육분의 시' 중)

특히 이 시의 마지막에 놓인 쉼표가 계속해서 행위가 이어지는 것을 내포하는 것처럼 보여 더 긴 여운을, 시간의 지속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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