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해, 달리는 해… ‘군마도’의 에너지[박현주 아트에세이 ⑪]

기사등록 2026/01/03 01:00:00
[서울=뉴시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김기창, 군마도, 1955, 205x408.2cm.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2021.5.07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치켜든 목, 뒤틀린 몸, 날뛰는 근육.
붓질 몇 번으로 완결된 갈기와 꼬리는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하다.

군마(群馬).
방향을 묻지 않고, 이유를 따지지 않은 채,
서로의 숨결에 밀려 앞으로 쏟아지는 집단의 에너지가 강렬하다.

2021년 이건희컬렉션으로 공개된 한국화가 김기창(1913~2001)의 ‘군마도’다.
1955년작, 가로 5미터에 달하는 4폭 병풍.
수묵채색 위로 여섯 마리의 말이 원을 그리며 격렬하게 뒤엉킨다.

이 작품은 전후(戰後)의 풍경이다.
폐허 위에서 다시 달려야 했던 시대,
개인의 결심보다 집단의 추진력이 먼저 작동하던 시간이다.

김기창은 훗날 말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깨끗함, 영리함, 용맹함.
노하면 하늘로 날뛰지만, 마음이 너그러우면 순해지는 존재.
그는 그 성격을 인간의 감정 세계로 화폭에 옮기고자 했다.

‘군마도’는 그 번역의 결과다.
감정은 질주로,
의지는 근육의 방향으로 바뀐다.

중요한 건 이 말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머리는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지만, 멈추지는 않는다.
이 무질서야말로 작품의 윤리다.

운보 김기창, <군마도>(1950-1960년대 추정), 종이에 수묵채색; 4폭 병풍, 169 x 335 cm (154 x 80 cm x 4 ea.) 아라리오뮤지엄 소장. ⓒ(재)운보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군마는 목표를 합의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를 밀어내며 속도를 만든다.
여기서 속도는 무모함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다.

새해 우리는 자주 ‘작심삼일’을 두려워한다.
결심이 배신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다른 선택지를 제시한다.

결심 대신 운동량,
계획 대신 가속.

의지는 흔들리지만,
속도는 몸을 앞으로 데려간다.
한 번 달리기 시작한 집단의 관성은
개인의 망설임을 넘어선다.

군마는 질문하지 않는다.
왜 달리는지, 어디로 가는지.
시대가 이미 그 등을 밀어놓았기 때문이다.

2026년 말의 해를 이렇게 시작해보자.
방향을 완벽히 정한 뒤에 출발하겠다는 유혹을 내려놓고,
이유 없는 첫 발을 내딛는 것.
군마처럼, 서로의 숨결에 떠밀려서라도.

군마는 방향을 묻지 않는다.
작심삼일이 두렵다면, 결심하지 말자.
올해는 말처럼.
이유 없이 달리는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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