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판단 평화 협상 양국 입지 큰 영향
전문가들 "수시로 통화하는 푸틴이 우위"
우크라는 유럽국 결집-수시 소통으로 맞대응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지난 28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회담한 뒤 귀국하던 도중 러시아가 돌연 우크라이나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관저 중 한 곳을 드론으로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와 회담한 직후 푸틴과 통화한 트럼프가 이 소식을 전하면서 화가 났다는 반응을 보이자 다급해진 우크라이나가 공격한 적이 없다며 러시아가 허위 주장을 편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반박을 무시하고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공격에 대한 반응으로 협상에서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벌이는 이 공방전은 트럼프의 생각이 두 나라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두 나라 모두 트럼프를 평화 협상의 핵심 축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안 전부터도 두 나라는 전장 상황에 대한 트럼프의 인식을 자국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왔다.
이와 관련 미 뉴욕타임스(NYT)가 30일 전문가들이 트럼프의 인식을 장악하는 싸움에서 러시아가 우위를 차지해온 것으로 지적한다고 전했다.
◆트럼프 러시아 편들기 일쑤
실제로 트럼프는 여러 차례 러시아 편을 들었다. 부분적으로 러시아가 전장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고 궁극적으로 강한 쪽이 승리할 것이라는 트럼프의 사고방식이 그 같은 행보의 배경이 됐을 것이다.
이에 따라 젤렌스키는 트럼프의 친 러시아적 행보를 되돌리기 위해 유럽 국가들을 결집하고 미국과 빈번하게 접촉하는 등 분주한 외교적 노력을 폄으로써 트럼프가 일방통행이 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유럽의 연구기관 라스무센 글로벌의 해리 네델쿠 선임 이사는 트럼프가 푸틴과 친밀한 관계인데 비해 젤렌스키는 그렇지 못해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푸틴은 트럼프가 젤렌스키를 만나기 전후에 트럼프와 통화해 자신의 주장을 직접 전달함으로써 젤렌스키-트럼프 협상의 방향에 영향을 미쳐왔다.
이번에도 자신의 관저를 우크라이나가 공격했다는 주장도 트럼프와 전화 통화하면서 전달함으로써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화를 내도록 유도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가 양보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동부 도네츠크 지역의 전황을 둘러싼 공방전도 주목된다.
◆러 "어차피 내줄 땅 양보해 병력 피해 줄여라"
이달 초 푸틴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북동부 쿠피안스크를 점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젤렌스키가 열흘 뒤 쿠피안스크에 직접 나타나 여전히 우크라이나군이 장악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푸틴은 29일에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부 주요 산업 도시 자포리자에서 불과 약 15km 떨어진 곳까지 진출했다면서 러시아군에 조속히 점령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자포리자 지역의 주요 도시를 점령한 적이 없으며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에 그럴 만한 병력 여유가 없다고 지적한다.
다만 전반적으로 최근 몇 주 사이 러시아군이 진격해온 것은 사실이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의 진격을 축소하려 애써왔다.
동부의 시베르스크가 지난주 러시아군에 함락한 사실을 뒤늦게 인정한 것이 그 예다.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29일 러시아군이 동부 도네츠크 지역의 전략 도시 포크로우스크의 절반만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외부 단체들이 집계한 전장 지도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포크로우스크의 약 3분의 2를 점령하고 있으며 현지의 우크라이나 병사들도 거의 내줬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양측은 서로 전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과시해 왔다. 도네츠크의 전장 상황이 평화 협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도네츠크를 사수하려고 더 많은 병력을 잃기보다 영토를 내주고 타협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해왔다.
트럼프도 28일 젤렌스키에게 같은 논리를 폈다. 우크라이나가 “앞으로 몇 달 동안 전장에서 잃게 되는 것보다는 합의를 받아들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우크라 "전쟁 1000일 동안 러가 점령한 영토 1%도 안된다"
우크라이나는 이에 맞서 러시아의 진격 속도가 느리며 모스크바가 도네츠크의 나머지 지역을 점령하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지난 8월 트럼프와 만났을 때 젤렌스키는 전장 지도를 펼친 채 자신의 주장을 설파했다. 1000일이 넘는 전쟁 동안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가 1%도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양측은 또 트럼프에게 돈벌이가 될 수 있는 사업들을 제시해 트럼프를 끌어들이려 애써 왔다.
러시아 국부펀드 수장이면서 협상의 대표인 키릴 드미트리예프는 지난달 미국 대표들과 협상에서 에너지, 인공지능, 광물 채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이 러시아와 장기적으로 경제 협력을 한다는 조항을 협상문안에 삽입했다.
우크라이나도 전후 재건에 미국이 참여하는 것을 평화계획안에 포함시키고 있다. 트럼프가 28일 젤렌스키와 만난 자리에서 우크라이나 재건을 통해 벌 수 있는 돈의 규모가 엄청나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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