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수지 '최대 흑자' 랠리에도 1400원 중반 고환율
수출로 달러 벌어도…기업들, 美 투자에 환전 '보류'
1~10월 해외증권투자 1171억달러 > 경상수지 896억달러
고환율 뉴노멀 대비…"국내 투자 매력 높여야"
[서울=뉴시스]남주현 기자 = 2025년 한국 경제는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 자금 유입에 코스피가 4000선을 돌파했다. 하지만 원화값은 힘없이 무너지면서 '경상수지 흑자 = 원화 강세'라는 전통 공식이 완전히 깨졌다. 전문가들은 해외투자가 일상이 되면서 외환 수급의 잔 자체가 바낀 점을 원화 약세 근본 배경으로 지목한다.
서학개미는 물론 국민연금과 기관까지 해외 투자에 나서면서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에 머물지 않고, 다시 빠져나가고 있다. 정부 역시 이탈하는 외환 흐름을 붙잡을 마땅한 대응책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고환율을 뉴노멀로 받아들이는 한편 해외투자의 국내 환류를 유도할 수 있는 중장기적 전략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상수지 사상 최대지만, '금융위기'급 환율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5년 1~10월 경상수지는 895억8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누적 기준 역대 최대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 돌입에 수출이 회복세를 타고, 국제유가 하락에 원자재 수입 단가가 안정되면서 흑자 폭이 커졌다. 이대로라면 역대 최대치인 연간 전망치 1150억 달러 달성도 충분하다.
지난해엔 증시도 활기를 되찾았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4000시대를 열었고, 코스닥도 900선에 올랐다. 주식과 채권 등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 유입도 늘었다. 외국인 증시 자금 유입은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346억 달러로, 이미 2024년 전체 유입액인 208억 달러를 크게 웃돈다.
그럼에도 환율은 반대로 움직였다. 지난해 연평균 환율 종가는 1422.16원으로 외환위기 평균 1398.39원보다 높은 역대 최고 였다. 그나마 12월 들어서 1480원을 넘나들자 정부가 고강도 개입에 나선 후에야 연말 종가는 1430원대로 내려왔다. 같은 기간 달러값(DXY)이 98~100 사이 박스권임을 감안할 때 원화 가치는 그야말로 폭락했다.
전통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는 달러 공급을 늘려 원화 강세로 이어졌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특히 기업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환전하지 않고 쌓아두며 대미 투자에 대비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업의 외화예금 월평균 잔액은 919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제는 외환 수급의 판 자체가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상수지 규모를 뛰어넘는 해외투자 '광풍'에 수출과 환율을 잇던 전통적 연결고리가 사실상 끊어졌다.그 중심에는 국민연금과 기관은 물론 개인들의 공격적인 해외투자가 있다. 한은 관계자는 "거주자의 해외투자가 확대되며 환율과 양의 그래프를 그려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증권투자 > 경상수지, '판' 바뀐 외환수급
순대외자산(NFA)는 이런 급격한 구조 변화를 나타내는 핵심 지표다. 국내 거주자가 해외에 보유한 금융자산에서 외국인의 국내 투자금을 뺀 순자산 규모는 2014년 3분기 플러스 전환한 후 2023년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6월 기준 국내총생산의 55% 수준으로 2024년 12월 말 58.8%에 이어 연간 기준 역대 2위에 올랐다.
특히 올해 해외로 빠져나간 달러는 기록적이다. 1~10월 거주자의 해외 증권투자는 1171억 달러로, 과거 10년 평균(512억 달러)은 물론 종전 최고인 2024년 같은기간 710억 달러를 크게 웃돈다. 같은 기간 경상수지 흑자(896억 달러)보다 더 크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보다 해외투자로 빠져나간 달러가 더 많았다는 뜻이다.
실제 연기금들은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명분으로 해외자산 비중을 늘리고 있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는 지난해 9월 말 해외주식이 508조원으로 전체 자산의 37.3%를 차지했고, 해외채권은 98조원으로 23.6%에 달했다. 특히 지난해 1~3분기 해외주식 규모는 245억 달러로 전년대비 92% 불어났다.
해외주식에 베팅하는 서학개미도 거침없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3일 기준 개인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327억 달러(약 48조원)에 달했다. 2024년 한해 동안 순매수액 105억 달러의 3배를 넘는 수준이다. 코로나19 당시 해외투자 '광풍'에 한 해동안 208억 달러를 사들였던 2021년 기록도 단숨에 뛰어넘는다.
◆해외투자 '일상'에 고환율 뉴노멀…"국내 투자 매력 높여야"
올해도 경상수지는 1300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효과에 외국인 자금 유입도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동시에 연간 250억 달러에 달하는 정부의 대미 투자와 기업의 직접 투자 확대, 그리고 경제 주체의 해외투자 열풍에 원화 약세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해 말 당국의 시장 개입에 환율 급등세는 일시 진정됐지만, 1400원대 고환율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구조적으로 무너진 외환 수급을 단기 처방으로 막기엔 역부족이란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외환 흐름을 되돌릴 유인책과 보다 정교한 환율 전략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정부 역시 해외로 빠져나간 자금의 리턴을 위해 국내 복귀 시 인센티브와 해외 자회사 배당 수입에 대한 세제 혜택 등 조치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달러 공급으로 이어지며 환율이 안정됐지만 최근에는 미국 주식 투자 열풍이 이어지며 달러 수요가 더 커졌다"면서 "국내 주식 시장에서 작전 세력과 금융 범죄를 엄격히 단속하고, 배당 확대 등으로 국내 투자 유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화 약세가 구조적 요인과 펀더멘털이 맞물린 결과인 만큼, 해법도 단기 처방을 넘어선 중장기 전략에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조 개혁과 산업 경쟁력 강화로 투자 매력을 끌어올리고,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것이 결국 원화에 대한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국가 통화 가치는 결국 성장률과 투자 매력에 따라 결정되는 측면이 크다"면서 "성장률 부진이 정책 여력 약화와 원화 약세로 연결되고 있는 만큼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특히 생산성과 장기 성장률 제고를 위한 구조 개혁이 필수"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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