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정영 수습 기자 =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의 초조와 번뇌를 해탈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 '마음의 안정'이라는 것은 무기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물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다."(본문 중)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사람을 과거에 붙잡아두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와 현실 속에서 만족과 절제를 배우게 하고, 그 속에서 행복의 실체를 발견하게 한다. 이는 작가 피천득의 산문이 지닌 가장 큰 힘이다.
신간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민음사)는 피천득의 대표 수필집 '인연'에 수록된 글과 아들에게 보낸 미공개 편지 7편을 함께 묶은 산문집이다. 딸 '서영이'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 잘 알려진 피천득이지만, 이번 책에서는 아들을 향한 담담하고 절제된 애정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책은 그동안 딸의 서사에 가려졌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통해 한국 근대 수필의 정수가 세계문학전집이라는 넓은 좌표 속에서 다시 읽힐 가능성을 제시한다.
제목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는 수필 '인연'에 등장하는 한 구절에서 따왔다. 피천득은 이 글에서 "어떤 만남들은 스쳐 지나갔어야 했고, 어떤 관계들은 조용히 물러났어야 했다"고 말한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했을 인연'이라는 고백 뒤에 이어지는 이 담담한 문장은 인연의 빛 뿐 아니라 그 그림자를 담드러낸다. 이 제목은 피천득 읽기에 있어 대중화되지 않은 비창감과 함께 그의 문학이 지닌 사랑과 윤리의 이면을 조용히 비춘다.
피천득은 1930년 '신동아'에서 '서정소곡'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편지', '가신 님' 등을 발표하며 순수서정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눈보라치는 밤의 추억', '나의 파일' 등 다수의 수필을 발표하며 시의 정서를 이어받았다. 일상에서의 생활 감정을 섬세한 문체로 표현한 그의 산문은 서정적 수필의 대명사로 불리며 한국 수필의 문학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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