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의 데뷔작 '남극'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브로츠와프의 쥐들: 병원(다산책방)=로베르트 J. 슈미트 지음
정보라 작가가 직접 기획하고 번역한 좀비 아포칼립스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 편. 시리즈는 '카오스', '철창'의 제목으로 두 편이 소개된 바 있다. 이번 작품은 두 작품의 세계관과 이어지면서 독립적인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
브로츠와프의 한 정신병원에 이송된 환자는 본인의 아내가 죽었다 살아나며 아이들을 뜯어먹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과격해진 주장에 미치광이처럼 날뛴 환자는 머리를 다쳐 사망하게 된다.
사람들은 환자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의 주장처럼 도시에는 좀비 전염병이 확산하고 있었다. 지역을 봉쇄하며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등 초기 사태 진압에 나서며 모두가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하지만 상황이 점점 악화하며 집단의 생존보다 개인의 생존을 더 우선시하며 분열의 상황에 이르게 된다.
소설은 감염병을 매개로 인간의 연약하고 민감한 면모를 드러낸다. 나아지지 않고 악화하는 상황에서 존엄성은 사라지고, 인간의 육체와 정신 모두 훼손되는 과정을 들춘다.
동유럽 SF 소설의 거장으로 꼽히는 저자의 아포칼립스 시리즈로, 작품은 저자의 출생지를 배경으로 한다.
▲남극(다산책방)=클레어 키건 지음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맡겨진 소녀' 등으로 문학 애호가들에게 사랑받아 온 작가 클레어 키건의 데뷔작. 그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5번째이다.
1999년 펴낸 이 소설집은 총 15편의 단편으로 구성됐다. 작가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간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어린시절과 대학시절의 풍경을 이야기 속에 녹여냈다.
표제작은 지난 7월 국내에 출간된 소설집 '너무 늦은 시간'에 수록된 바 있다. 결혼한 여성이 낯선 도시에서 낯선 남성을 만나 '일탈'하는 전개로 흘러간다. 다만 여성은 와중에 의도치 않은 상황을 마주하게 되고 위기에 처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던 여자는 멀리 나갈 때마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다음 주말에 알아내기로 결심했다. 12월이었고, 또 한 해의 막이 닫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너무 나이가 들기 전에 하고 싶었다. 실망스러울 것이 분명했다." ('남극' 중)
이 밖의 단편들에서도 여성 인물들은 원치 않는 임신, 생계를 위해 감내해야 하는 선택 등 불리한 현실과 마주하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다른 작품에서 남성이 구원의 역할을 맡았다면, 이 소설집은 정반대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작품을 통해 20대였던 작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엿볼 수 있다.
매해 부커상 후보로 거론되는 저자는 이 소설로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 마틴 힐리 상, 프랜시스 맥마너스 상, 윌리엄 트레버 상 등 아일랜드 문단에서 여러 상을 휩쓸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xcusem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