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미국을 지구의 암호화폐 수도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이후 친(親) 가상자산 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CBDC·중앙은행이 제조·발행·유통하는 디지털화폐) 상용화를 통해 새로운 금융 패권을 노리고 있다. 세계의 권력자들은 왜 가상화폐에 집착할까.
신간 '세상을 바꾼 화폐들, 그리고 비트코인'(책과삶)은 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금융·통화 혁명과 글로벌 금융의 탈중앙화 흐름을 입체적으로 짚는다.
저자 홍익희는 달러 패권의 미래, 인플레이션이 자산을 잠식하는 원리의 답을 놀랍게도 3000년 인류의 화폐 역사에서 찾아낸다.
이 책은 단순한 경제서나 투자서가 아니다. 돈의 흐름을 통해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를 읽어내는 '화폐 인문서'다.
"2차 대전 이후, 달러는 세계 기축통화가 되었다. 미국은 국채 발행과 달러 발권이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나라다. 곧 무제한의 적자재정을 통해 세계의 상품을 달러로 사들일 수 있다. 달러를 찍는 행위 자체가 곧 세계의 부를 흡수하는 행위가 된 것이다. 달러를 찍는 행위 자체가 곧 세계의 부를 흡수하는 행위가 된 것이다. (중략) '기축통화'란 '지구적 권력의 상징'이었고, 그 특권은 영원하지 않았다. 오늘날 세계는 그 균열의 초입에 서 있다." ('프롤로그' 중)
책은 대체 로마제국 금화의 붕괴, 르네상스의 금융 혁명, '오즈의 마법사' 속 금본위제 논쟁, '스타워즈'와 '듄'에 담긴 자원전쟁, 드라큘라·프랑켄슈타인에 투영된 자본주의의 공포까지, 익숙한 역사와 문화 텍스트를 통해 돈과 권력의 내막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돈이 인간의 욕망, 권력, 신념, 그리고 전쟁과 어떻게 얽혀왔는지 생생하게 복원한다.
"현대 금융자본주의 역시 다르지 않다. 증권거래소의 화면 속 숫자가 올라갈 때, 저개발국의 원자재 노동자와 환경은 여전히 대가를 치른다. 리튬 배터리, 값싼 패션, 커피 농장, 농산물-그 어느 것 하나도 누군가의 고통 없이 생산되지 않는다. 누가 돈을 쥐고 있는가? 금융 상품과 투자 포트폴리오의 주인이다. 누가 피를 흘리나? 이름 없는 노동자, 전쟁으로 내몰리는 시민, 환경을 지탱하던 생명체이다." (5부 '승자 뒤에는 항상 돈이 있었다' 중)
"비트코인은 마법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마법은 신비가 아니라 수학적 약속과 사회적 합의에서 비롯된다. 과거의 돈이 '왕의 명령'이었다면, 비트코인은 '인간이 만든 규칙에 대한 믿음'이다. 곧 권력의 신뢰에서 규칙의 신뢰로의 전환- 이것이 비트코인이 불러온 가장 근본적인 변화다." (6부 '기축통화의 황혼, 새로운 질서' 중)
독자는 비트코인이 2008년 금융위기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기술적 현상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것은 3000년 동안 이어진 '신뢰'를 향한 인류의 처절한 투쟁이자, 닉슨 쇼크와 2008년 금융위기가 예고한 '필연적 귀결'임을 보여준다.
책은 화폐를 둘러싼 근본적인 문제인 '인간의 상호 신뢰'를 인간의 손에서 기술로 옮긴 문명사적 사건인 비트코인, 스테이블코인의 출현 등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 요구하는 윤리적 각성과 인간 존재의 근본적 의미를 다시 묻는 인문학적 성찰까지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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