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정영 수습 기자 = "대다수의 학자들은 미노아 크레타가 가부장제 사회가 아니었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중략) 미노아 남성들은 여신을 경배하고 음악을 연주하며, 의례를 이끄는 여성들을 존중하고 서로 화합한다."
국내 최초 여신학 박사이자 1세대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김신명숙이 '처음 만나는 미노아 크레타'(돌고래)를 펴냈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 문명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조명돼 온 미노아 문명을 여신 신앙, 자연, 평화, 현대성이라는 키워드로 입체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책은 인장, 프레스코화, 건축, 도자기, 유적지 등 핵심 유물 약 100점 엄선해 전면 컬러로 수록했다. 유물 하나하나를 통해 미노아 사회의 일상과 세계관을 짚어내며, 폭력과 지배의 서사로 환원되지 않는 문명의 결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계급 분화와 전쟁의 확산이 가부장제 사회의 출연으로 이어졌다는 통설과 달리, 미노아 문명은 예외적 사례로 제시된다. 남성 지배자가 군림하는 장면은 유물에서 거의 확인되지 않고, 창과 칼 같은 무기류의 비중도 현저히 낮다. 저자는 이를 근거로 미노아 사회가 폭력과 정복의 논리로 설명되기 어려운 문명이라고 주장한다.
미노아 유물의 시각적 아름다움 또한 이 책의 중요한 축이다. '백합', '푸른 원숭이들', '영양' 등 대표적인 벽화에서 자연은 배경이 아닌 중심 주제로 등장한다. '파리지엔느'라는 그림에 보이는 인물은 과감한 색채 대비로 표현돼 오늘날까지 패션, 대중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반복적으로 소환되고 있다.
미노아 사회가 여성 우위 사회였는지 가모장제 사회였는지를 두고는 여전히 다양한 견해가 공존한다. 저자는 어느 한쪽의 결론을 단정하지 않고 여러 학자의 해석과 근거를 다양하게 제시한다. 다만 여러 문헌 기록을 종합해 미노아 사회가 가부장적 질서에 기반했다기보다 성별 간 위계가 완강하지 않은 사회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저자 김신명숙은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의 객원연구원이자 여신 연구자다. 2013년 서울대학교에 여성학협동과정에서 국내 최초의 여신학 분야 박사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여성관음의 탄생', '여신을 찾아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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