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백의 경계 허무는 21세기형 '백조의 호수'
거장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안재용과 함께 내한
내년 5월, 서울·화성·대전 등 3곳서 총 4회 공연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반세기 동안 전 세계 무용 팬들을 매혹시켜온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내년 5월 한국을 찾는다. 예술감독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65)의 대표작 '백조의 호수(LAC)'로는 국내 초연이다.
지난 2005년과 2019년 '신데렐라', 2023년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은 3번째 작품이자 4번째 내한무대다. 이번 내한은 발레단의 레퍼토리 중 가장 사랑받는 원작 '백조의 호수'로, 해외 언론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번 공연을 이끄는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는 고전을 해체하고 현대적 언어로 재조립하는 신고전주의 '서사 발레'의 세계적 거장이다. 마이요의 서사 발레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는 고전 발레의 관습적인 연기를 배제하고, 무용수의 움직임 그 자체에 감정과 서사를 녹여내는 독창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관객은 텍스트를 읽는 게 아니라, 춤을 통해 이야기 본질과 인물의 심리를 직관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1977년 로잔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존 노이마이어(86)의 총애를 받는 무용수로 활약했던 그는, 부상으로 인한 은퇴 후 안무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2001년 '니진스키상’을 시작으로, 2008년 무용계의 오스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안무가상, 2015년 러시아의 '골든 마스크상' 작품상을 석권했다. 2018년에는 로잔 콩쿠르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백조의 호수(LAC)'는 차이콥스키의 고전 '백조의 호수'를 마이요만의 시선으로 재탄생시킨 수작이다. 프랑스 원어 'LAC(라크)'는 '호수'라는 뜻이다. 2011년 초연된 이 작품은 전형적인 동화 속 사랑 이야기를 거부하고 '호수'로 대변되는 사건의 본질을 파고든다.
그는 원작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가족 내의 갈등, 그리고 흑과 백으로 대변되는 인간 내면의 선악이 충돌하는 치밀한 심리 드라마로 변주해 냈다.
이를 위해 마이요는 각 분야 최고의 예술가들과 드림팀을 꾸렸다. 서사의 깊이를 더한 드라마투르기는 프랑스 최고 권위 공쿠르상(Prix Goncourt)을 수상한 작가 장 루오가 맡았다. 무대는 '프랑스 스트리트 예술'의 대부로 불리는 에르네스트 피뇽-에르네스트가 담당했다.
여기에 필립 기요텔의 파격적인 의상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는 영화 '아스테릭스: 미션 클레오파트라'로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 의상상을 수상했으며, '태양의 서커스'의 '큐리오스(KURIOS)', '드론 투 라이프(Drawn to Life)' 등 주요 작품 의상을 담당한 세계적인 디자이너다.
오케스트라 지휘는 러시아 볼쇼이 극장에서 활약하는 이고르 드로노프가 맡았다. 1991년부터 볼쇼이 극장에서 지휘자로 활약 중인 그는 정통 클래식과 현대 음악을 아우르는 탁월한 해석력으로 명성이 높다. 또 '로미오와 줄리엣', '신데렐라', '백조의 호수(LAC)' 등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핵심 레퍼토리를 지휘하며 발레단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해 왔다.
2019년 '신데렐라' 아버지, 2023년 '로미오와 줄리엣' 티볼트로 분했던 한국 출신의 무용수 안재용이 이번에도 고국의 팬들을 만난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2016년 몬테카를로에 입단해 군무(코르 드 발레)로 시작한 안재용은 입단 첫해부터 주요 배역들을 잇달아 연기한 뒤 2017년에는 세컨드 솔리스트로 승급했다. 이후 한 번에 두 단계를 승급해 2019년 수석무용수로 올라섰다.
모나코는 20세기 초 러시아 출신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Les Ballets Russes)'가 거점으로 삼았던 현대 발레의 성지였다. 1929년 디아길레프 사망 후 1932년 발레단이 결성됐으나 분열과 해산의 역사를 거쳤다.
1985년 카롤린 공주가 발레를 사랑했던 어머니(모나코 공비 그레이스 켈리)를 기리며 모나코의 무용 전통을 부활시키고자 왕립으로 창단했다, 이들은 고전 발레의 우아함과 현대 무용의 파격을 결합하며 세계 무용계 트렌드를 선도해 왔다. 특히 1993년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전통을 답습하는 발레단이 아니라, 동시대의 감각을 무대 위에 구현하는 예술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2026년 5월 13일 화성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16~17일 서울 예술의전당, 20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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