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라이 판결, 홍콩의 민주주의·자유 침식”…국제사회, 석방 촉구 잇따라

기사등록 2025/12/16 12:06:51 최종수정 2025/12/16 13:36:24

트럼프, 10월 시 주석 대면 회담 이어 다시 석방 언급

패튼 전 총독 “라이, 홍콩으로 밀입국 후 반중 활동해 미움 사”

EU “국제 비즈니스 중심 홍콩의 근간인 법치 신뢰 약화”

[타이베이=AP/뉴시스] 홍콩 활동가들과 지지자들이 지난 8월 2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지미 라이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2025.12.16.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홍콩 민주화 운동가이자 반중 언론인 지미 라이(78) 빈과일보 창업주가 15일 고등법원에서 홍콩국가보안법상 외세결탁과 선동혐의 등 3건의 혐의로 최고 무기징역이 가능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국제사회에서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중국은 “어떤 형태로든 홍콩 사법이나 중국 내정에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일축했다.

홍콩 국가보안법은 외국 세력과 공모하여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범죄를 저지른 자는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범죄의 중대성에 따라 종신형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빈과일보는 홍콩 반환전인 1995년 6월 창간 후 반중 매체로 지목돼 압박을 받다 2021년 6월 자진 폐간했다.

◆ 트럼프 “라이, 나이도 많고 건강도 좋지 않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라이의 석방을 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매우 안타깝다. 시 주석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고, 라이를 석방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지만 언제 시 주석에게 요청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는 나이가 많고 건강도 좋지 않다. 그래서 요청을 했고,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30일 부산에서 시 주석과 만났을 때 라이의 석방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 패튼 전 총독 “라이 판결, 1984년 중영 공동성명 위반”

홍콩이 반환되기 전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마지막 총독을 지낸 크리스 패튼은 중국 공산당을 신뢰할 수 있거나 스스로 개혁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라이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패튼은 15일 성명에서 정치적으로 임명된 판사들이 배심원단 없이 라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은 중국이 체결한 합의를 경시하고 자유를 무시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지적했다.

패튼은 1984년 홍콩에 관한 중영 공동선언에 따르면 홍콩의 자유와 법치주의는 1997년 베이징에 주권이 반환된 후 50년 동안 유지되어야 하는데 중국이 약속을 명백히 위반했다고 말했다.

패튼은 중국이 라이를 증오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본토에서 홍콩으로 밀입국해 홍콩이 누리는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또한 영국 시민권을 가진 라이가 홍콩 반환 후 타국으로 이주할 기회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홍콩에 남아 시민들과 함께 싸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라이는 1800일 넘게 구금되어 있는 동안 영국 외교관 접견권을 박탈당하고, 가톨릭 신자로서 미사 참석 권리도 빼앗겼다고 패튼은 주장했다.

패튼은 영국에 본부를 둔 인권 단체 ‘홍콩 워치’의 후원자다.

‘홍콩 워치’는 라이의 판결에서 ‘홍콩 워치’와 관련된 인물들과의 교류로 ‘외세와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는 것을 비난했다.

◆ 국제중국의회연맹(IPAC) 성명 “국제사회가 中 법적 의무 강제해야”

대만중앙통신에 따르면 약 45개 국가와 지역의 300여 명 의원들로 구성된 국제중국의회연맹(IPAC)도 15일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IPAC와 회원들은 홍콩 당국에 이해 ‘외세’로서 라이와 ‘음모와 공모’에 가담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단체다.

각기 다른 국가 및 지역 출신의 의원 76명은 공동 성명에서 라이가 겪고 있는 고통의 일부 원인이 국제 사회가 중국이 법적 책임을 이행하도록 효과적으로 강제하지 못한 데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국제법에 대한 심각한 위반 행위가 양자 및 다자 관계에 불가피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IPAC 공동 성명에 참여하는 국가 및 지역의 현직 의원들은 유럽의회,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독일 등 다양하다.

대만 민진당의 판윈 국회의원도 IPAC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다.

◆ EU “국제 비즈니스 중심 홍콩의 근간인 법치 신뢰 약화”

유럽연합(EU)은 이번 판결이 홍콩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침식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하며 라이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석방을 촉구했다.

유럽 대외관계청(EEAS)은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이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으로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의 민주주의와 기본적 자유가 침식되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지적하했다.

EU는 “홍콩이 국제 비즈니스 중심지로서 역사적으로 성공한 것은 법치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라이에 대한 판결은 홍콩의 법률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더욱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 언론 단체 및 각국 성명

언론인보호위원회(CPJ) 아시아태평양 지부장 베리 이는 “이번 부당한 유죄 판결은 수치스러운 박해 행위”라며 “홍콩이 언론 자유를 얼마나 경시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라이의 유일한 ‘죄’는 신문사를 운영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한 것뿐”이라며 “그가 감옥에서 보내는 하루 하루는 건강 악화와 사망 위험을 높이는 것이어서 즉시 가족과 재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워싱턴 소재 홍콩 인권단체 ‘홍콩을 위한 캠페인’의 사무엘 추 회장은 “라이는 권력이 언론과 신념을 좌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라며 “그런 관점에서 오늘 판결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여전히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영국 외무부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 X에 “정치적 동기가 있는 라이 기소와 유죄 판결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대만 대륙위원회는 “이번 판결은 홍콩의 자유, 민주주의, 사법 독립이 완전히 훼손되고 말살되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선언하는 것과 같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 홍콩 행정장관 “판결은 홍콩 핵심 가치 수호”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이번 판결을 환영하며 라이가 자신의 언론 매체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증오를 조장하고 폭력을 미화하며 중국과 홍콩에 대한 외국 제재를 부추겨 홍콩 시민의 안녕을 해쳤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판결이 홍콩의 핵심 가치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는 “관련 국가들이 홍콩 사법 사건 처리와 관련하여 불필요한 논평을 하지 않고, 어떠한 형태로든 홍콩의 사법 제도나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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