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출된 시리아 아사드 전 대통령과 가족, 모스크바에서 호화생활”

기사등록 2025/12/16 07:58:20 최종수정 2025/12/16 09:52:24

러시아 고급 주택단지 거주…푸틴에게는 ‘무의미한 존재’

집에 명품, 부인과 자녀는 UAE에 쇼핑 여행 등 생활

아사드, 美 언론 인터뷰 러시아 당국 승인 기다려

[베오그라드=AP/뉴시스] 지난해 12월 8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 있는 시리아 대사관 앞에서 한 남성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사진을 찢으며 시리아 정부의 붕괴를 축하하고 있다. 2025.12.16.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시리아의 철권 통치자로 지난해 12월 반군들에 의해 축출된 바샤르 알 아사드 전 대통령과 가족들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호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이 15일 보도했다.

아사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권력자가 되기 전 영국에서 유학 당시 공부했던 안과 의사 공부를 다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드 가족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한 지인은 “그는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안과 의사 실력을 다시 갈고닦고 있다”며 “안과는 그의 열정이고,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지인은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기 전에도 아사드는 다마스쿠스에서 정기적으로 안과 진료를 해왔다”며 모스크바의 부유층이 그의 주요 고객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아사드의 철권 통치 시절 14년간 62만 명이 사망하고 거의 1400만 명이 난민이 발생했다.

◆ 러시아 고급 주택단지 거주

가디언은 아사드 일가의 지인, 러시아와 시리아의 소식통, 그리고 공개된 자료들을 통해 한때 철권통치로 시리아를 지배했던 아사드와 가족의 망명 생활의 윤곽이 드러났다고 전했다.

사정에 정통한 두 소식통에 따르면 아사드의 가족은 러시아 엘리트들이 거주하는 고급 주택 단지인 루블료프카에 거주할 가능성이 높다.

그곳에서 그들은 2014년 우크라이나를 떠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과 같은 인물들과 어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아사드 일가는 돈이 부족할 일은 없다. 2011년 아사드가 시위대를 유혈 진압한 후 서방의 제재로 세계 금융 시스템 대부분에서 차단당하자 일가는 재산의 상당 부분을 모스크바에 예치해 서방 규제 당국이 손댈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베이징=AP/뉴시스] 리창 중국 총리가 2023년 9월 25일 중국 베이징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아사드 대통령은 항저우에서 열린 제19회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석한 뒤 베이징을 방문했다. 2025.12.16.

◆ “푸틴에게 아사드는 무의미한 존재”

호화로운 거처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한때 누렸던 시리아 및 러시아 엘리트층과의 교류는 단절됐다고 한다. 

아사드가 시리아에서 막판에 도주하면서 그의 측근들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의 러시아 측근들은 그가 정권 고위 관리들과 접촉하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한 가족의 지인은 “그는 아주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며 “외부 세계와의 접촉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 대통령 비서실 장관인 만수르 아잠과 자신의 최측근 경제 고문이었던 야세르 이브라힘 등 몇몇 사람들과만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지인은 말했다.

크렘린궁에 가까운 소식통은 아사드가 푸틴과 러시아 정치 엘리트들에게는 사실상 무의미한 존재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푸틴은 권력을 잃어가는 지도자들을 용납하지 않으며, 아사드는 더 이상 영향력 있는 인물로 여겨지지 않을 뿐더러 저녁 식사에 초대할 만한 흥미로운 손님으로도 취급받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모스크바=AP/뉴시스】 2015년 10월 20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2025.12.16. 

◆ 아사드의 야반 도주

지난해 12월 8일 새벽 시리아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로 접근하자 아사드는 아들들과 함께 다마스쿠스를 탈출했다.

그들은 러시아 군 호위를 받아 흐메이밈 공군 기지로 이송된 후 러시아군 수송기를 타고 시리아를 떠났다.

아사드는 자신의 친척이나 가까운 지지자들에게도 임박한 정권 붕괴에 대해 경고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고 도주했다.

한 관계자는 “며칠 동안 바샤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며 “아사드는 마지막 순간까지 대통령 궁에 남아 반군들은 난로의 숯불이 아직 따스한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아사드의 삼촌 리파트 알 아사드의 변호사는 바샤르가 시리아를 탈출한 후 의뢰인들이 어떻게 탈출해야 할지 몰라 공황 상태에 빠져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상황을 회상했다.

리파트의 변호사 엘리 하템은 “그들이 흐메이밈에 도착했을 때, 러시아 군인들에게 자신들이 아사드 가족이라고 말했지만 영어도 아랍어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여덟 명이 기지 앞 차에서 잠을 자야 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러시아 고위 관리의 개입 덕분에 가족이 오만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아사드 일가가 탈출한 후 처음 몇 달 동안 옛 측근들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가족들은 모스크바에 모여 영국 태생인 아사드의 부인 아스마를 돌보았다. 아스마는 수년간 백혈병을 앓아왔고 병세가 위독해진 상태였다.

그녀는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기 전부터 모스크바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아스마는 러시아 보안 당국의 감독 하에 진행된 실험적 치료 후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아사드, 언론 인터뷰 러시아 당국 승인 기다려

아사드는 인기 있는 미국 우익 팟캐스터와의 인터뷰를 예정하고 있지만 언론 출연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러시아는 아사드의 공개 석상 출연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지난 11월 이라크 언론과의 이례적인 인터뷰에서 엘브루스 쿠트라셰프 주이라크 러시아 대사는 아사드의 모스크바 생활에 대해 언급하며 축출된 독재자가 모든 공개 활동을 금지당했다고 확인했다.

그는 “아사드는 러시아에 살 수는 있지만 정치 활동에 참여할 수는 없다. 그는 어떤 언론이나 정치 활동에도 참여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바샤르 알 아사드의 가족.  2022년 시리아 알레포에서 촬영된 것으로 왼쪽부터 딸 제인, 아사드, 부인 아스마, 아들 하페즈와 카림 (출처: 전 시리아 대통령궁 페이스북) 2025.12.16.    *재판매 및 DB 금지

◆ 아사드 자녀들, 모스크바 엘리트 삶에 적응 중  

아사드 자녀들의 삶도 모스크바 엘리트로서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면서 비교적 큰 혼란없이 계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몇 달 전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는 가족 친구는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다. 아직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대통령 가족이라는 타이틀 없이 살아가는 삶에 적응해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아사드를 제외한 가족이 정권 종식 이후 공개 석상에 함께 모습을 드러낸 유일한 경우는 6월 30일 딸 제인 알 아사드가 모스크바의 명문대인 국립국제관계대학(MGIMO)에서 학위를 받은 졸업식이었다. MGIMO는 러시아 지배층 구성원들이 많이 다니는 대학이다.

대학 공식 웹사이트에 게시된 사진에는 22세의 제인이 다른 졸업생들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이 담겼다.

행사 당시 촬영된 흐릿한 별도 영상에는 아스마 여사와 두 아들 하페즈(24세), 카림(21세) 등이 관객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제인의 한 친구는 “가족들은 오래 머물지 않았고 다른 가족들처럼 제인과 함께 무대에서 사진을 찍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한때 아사드의 잠재적 후계자로 여겨졌던 아들 하페즈는 2월 텔레그램 영상에서 가족이 다마스쿠스를 탈출한 경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아사드가 측근들을 버렸다는 주장을 부인하면서 러시아가 아사드에게 시리아를 떠나라고 명령했다고 주장한 이후로 공개 석상에서 거의 모습을 감췄다.

유출된 자료에 따르면 하페즈는 대부분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폐쇄하고, 난독증을 앓는 어린 탐정을 주인공으로 한 미국 아동 시리즈의 가명으로 계정을 개설했다.

◆ 집에는 명품, UAE로 가족들 쇼핑 다니기도

가족과 가까운 소식통에 따르면 아이들과 어머니는 쇼핑에 많은 시간을 보내며 새로 마련한 러시아 집을 명품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고 한다.

유출된 러시아 자료에 따르면 제인 알 아사드는 고급 의류를 정기적으로 구매하고, 고급 페디큐어 살롱에 등록했으며, 모스크바의 엘리트 헬스클럽 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사드 자녀들은 아랍에미리트(UAE)를 자주 방문하며 아스마도 적어도 한 번은 동행했다.

가디언이 입수한 2017년부터 2023년까지의 유출된 항공편 기록에 따르면, UAE는 아사드 일가가 집권 시절부터 즐겨 찾던 여행지였다.

카림과 하페즈는 아부다비, 모스크바, 시리아를 오가는 항공편을 여러 차례 이용했는데 2022년 11월과 2023년 9월에도 이 항공편을 이용했다.

원래 아사드 가족은 모스크바에서 UAE로 이주하기를 희망했다. UAE는 그들에게 훨씬 더 친숙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지인에 따르면 그들은 러시아어를 할 줄 몰랐고 러시아 사회에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제 가족은 UAE조차도 아사드를 받아들이는 데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영구 이주가 당분간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UAE는 세계의 어두운 면모를 드러내는 엘리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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