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7일 개봉 영화 '고백하지마' 연출
각본 뿐만 아니라 배급·홍보까지 도맡아
"영화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이 좋아"
촬영 현장 실제 사건 영화화 한 즉흥극
1인 배급사 운영 "다른 영화 배급할 것"
내년에도 영화 두 편 각본·연출 준비 중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각본을 쓰는 배우에 관해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연출을 하는 배우에 관한 얘기에도 익숙할 것이다. 물론 두 가지를 모두 하는 배우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게다. 그런데 각본과 연출은 물론 배급과 홍보를 모두 하는 배우가 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일 것이다. 이제 관객은 그런 배우도 있다는 걸 알게 될 것 같다. 배우 류현경(42) 덕분이다. 류현경은 오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고백하지마' 각본·연출을 맡았고, 배급·홍보 담당자이기도 하다. 그는 "생각보다 많은 업무량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게 다 영화가 너무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류현경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배우. 1996년 데뷔 이후 그가 출연한 영화·드라마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만큼 그는 어떤 역할도 해낼 수 있는, 말하자면 좋은 배우로 평가 받으며 장기간 활동해왔다. 업계에서 탄탄한 입지와 경력을 가지고 있어서 딱히 아쉬울 게 없는 연기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류현경은 굳이 고생을 사서 했다. 그는 영화를 만들었고(각본·연출), 영화를 내보이기(배급·홍보)까지 했다. 언론시사회 일정을 직접 잡았고, 시사회 현장에 나가 직접 티켓을 나눠줬다. 시사회 후엔 인터뷰에 참석할 기자들과 직접 연락을 주고 받았고, 그렇게 약속을 잡아 인터뷰했다. 극장사와 직접 연락하며 상영관을 잡았고, 평소 가깝게 지내는 배우·감독을 동원한 홍보 계획도 세웠다.
"처음 시작할 땐 여기까지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영화를 선보이는 날이 다가오니까 영화를 만든다는 건 촬영만 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배급하고 홍보하는 일까지 모두 포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참 정성스러운 작업이죠. 제가 그 전에 알지 못했던 업계 시스템을 알게 되니까 좋은 경험이 된달까요. 일단은 여기 저기서 도움을 받으며 열심히 해보고 있습니다.(웃음)"
류현경이 처음 영화 제작을 경험한 건 중학생 때였다. 당시 비디오반이었던 그는 친구들과 함께 10분짜리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그 영화가 EBS '내 꿈을 펼쳐라'에 소개됐고, 심영섭 평론가가 나름의 평론도 해줬다고 한다. "그때 영화를 만든다는 재미를 알게 됐죠." 대학교도 연기 전공이 아닌 연출 전공으로 갔다. 단편영화를 찍기도 했다. 그러다가 삶의 경로가 조금 바뀌었고 연기에 매진하며 20~30대를 보냈다.
변화는 최근 영화 촬영 중에 생겼다. 김오키 감독의 '하나, 둘, 셋 러브'를 찍다가 동료 배우 김충길이 류현경에게 고백을 한 것이다. "충길이가 농담과 진담이 섞인 고백을 한 거예요. 실제로 충길이와 관계가 어색해졌다니까요." 류현경은 그 상황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문득 이걸 영화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뭐가 될지 모르고 시작한 겁니다. 어떤 목표가 있다거나 이 영화로 이루고 싶은 게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일단 찍다 보니까 이런 여정이 된 거죠. 주변에 있는 동료들이 십시일반으로 많이 도와줬어요."
러닝 타임 68분 소품 같은 영화인 '고백하지마'는 '류현경'이 '김충길'에게 갑작스럽게 고백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류현경은 류현경을, 김충길은 김충길을 연기했다. 일반적인 영화처럼 완벽하게 쓰인 각본이 있어서 대본대로 연기하는 게 아닌 류현경 감독이 방향과 줄거리를 잡은 상태에서 배우들에게 특정 상황을 주고 즉흥 연기를 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사실 전 대본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우이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론 이렇게 즉흥적인 연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할 수도 없고 무대에서 하기에도 무리가 있어요. 다만 영화에서 가능할 것 같았죠. 그래서 그 우연과 의외성이 가진 재미를 이 영화에서 추구해본 거죠."
그렇게 영화를 완성했으나 배급이나 홍보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처음엔 '고백하지마'를 극장에 공급해줄 배급사와 접촉했다. 하지만 류현경은 배급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직접 배급을 결심했다. 배급사 쪽에선 '고백하지마'를 그들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해보자고 제안했는데, 극장 개봉만 생각했던 류현경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유튜브 공개가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원한 방식이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내가 직접 하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렇게 만든 배급사가 '류네'다.
"글쎄요. 제가 이런 일까지 도맡을 정도로 에너지가 많아서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 좋아서 한다는 게 맞겠지요. 전 영화나 드라마를 정말 좋아해요. 촬영하는 것도 좋아하고, 현장에서 다른 배우 스태프와 대화하는 것도 좋아해요. 그 뿐만 아니라 기자들과 얘기 나누는 것도 좋아해요. 이 일과 관련된 모든 일을 다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류현경은 배급사 '류네'를 통해 앞으로 배급 일을 계속 해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가 앞으로 만들 영화 뿐만 아니라 배급이 필요한 다른 작품들을 맡아 일을 해보고 싶다는 얘기였다.
"제가 최근에 광주여성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했어요. 그때 본 단편 그리고 다큐 작품이 참 좋더라고요. 그런 영화를 배급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저한테 의뢰를 하실지…(웃음) '고백하지마'로 나름의 결과를 만들어서 다른 영화도 배급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정말 다양한 한국영화를 배급해보고 싶거든요."
류현경의 각본·연출·배급·홍보는 '고백하지마'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이미 내년 직접 각본과 연출을 맡을 영화 2편을 준비 중이다. 하나는 유튜버 곽튜브와 함께 만드는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시나리오를 써놓은 게 있다. 곽튜브와 함께하는 영화는 '고백하지마'처럼 즉흥극 형태가 될 예정이고, 류현경이 시나리오를 완성해놓은 영화는 일단 제작을 다른 곳에서 맡기로 했다. "곽튜브와 하기로 한 영화는 저와 곽튜브가 제작비를 반반 씩 내기로 했어요.(웃음) 다른 영화는 현재 제작 지원과 투자를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고백하지마'는 '아바타:불과 재'와 같은 날 공개된다. '주토피아2'가 있고, '아바타:불과 재'도 있는 연중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관객을 만나야 한다. 류현경은 일단 목표 관객수는 5000명이라고 했다.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돼서 관객을 만났어요. 그때 관객들이 저희 영화를 보고 즐거워 하는 모습을 잊을 수 없어요. '고백하지마'는 연말과 어울리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이 영화를 좋아해주실 분들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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