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르의 나라’ UAE 현대미술 110점 서울 상륙…번쩍임 대신 일상 감각

기사등록 2025/12/15 15:53:53

서울시립미술관 교류전…'근접한 세계' 개막

ADMAF의 두 번째 협력 프로젝트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15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 현대미술전 '근접한 세계'전시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아랍 전통 복장을 한 미술 관계자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2025.12.15.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아랍에미리트(UAE)는 익숙한 이름이지만, 정작 그 내부를 들여다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초고층 빌딩과 석유 부국, 빠른 개발의 이미지. 아랍에미리트는 오랫동안 ‘만수르의 나라’라는 단일한 프레임으로 소비돼 왔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아랍에미리트 현대미술전 ‘근접한 세계’는 바로 그 간극을 조심스럽게 좁힌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아랍에미리트 현대미술을 국내 최초로 대규모로 조명한다. ‘근접한 세계’를 주제로, 아랍에미리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40여 명(팀)의 작가가 참여해 회화, 영상, 설치 등 110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과 아부다비 음악예술재단(ADMAF)의 두 번째 협력 프로젝트다. 지난 5월 아부다비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 ‘Layered Medium: We Are in Open Circuit’에 이어, 이번에는 그 시선이 서울로 이동했다. 일방적인 초청전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건너가며 읽는 교류전이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15일 서울시립미술관 최은주 관장이 아랍현대미술전 근접한 세계에 대해 전시 소개를 하고 있다. 2025.12.15.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1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전시 제목 ‘근접한 세계’에 대해 “여러 단어를 놓고 오래 토론한 끝에 도달한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 알지 못하는 세계들이다. 그 거리와 오해를 다시 사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근접한 세계’가 말하는 것은 지리적 거리의 문제가 아니다. 전시는 “어떤 것도 다른 것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출발해, 사막과 도시,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역사, 삶과 예술이 서로 스며드는 지점을 탐색한다. 여기서 경계는 단절의 선이 아니라, 연결과 분리가 동시에 일어나는 막(膜)이다. 변화는 언제나 그 경계에서 발생한다.

이 전시는 화려함을 보여주기보다, 화려할 것이라는 기대를 조용히 배반한다. ‘만수르의 나라’라는 상상과 달리, 전시장에 펼쳐진 것은 부의 과시가 아닌 삶의 흔적이다. 번쩍이는 금박 대신, 이곳에는 건설 현장의 먼지와 집의 내부, 빠르게 변하는 도시 속 개인의 시선이 자리한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15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 현대미술전 '근접한 세계'전시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아랍 전통 복장을 한 미술 관계자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2025.12.15.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간담회 현장에는 전통 의상을 입은 아랍 기자들과 관계자들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작품 앞에 오래 머무는 시선과 서로 다른 언어로 오가는 짧은 대화는, 이 전시가 ‘타자를 전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감각이 실제로 접촉하는 현장임을 보여준다. ‘근접한 세계’는 그렇게 개념이 아니라 풍경으로 완성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15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 현대미술전 '근접한 세계'전시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아랍 전통 복장을 한 미술 관계자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2025.12.15.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전시는 화려한 ‘멀리 있는 세계’를 소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근접해 있었지만 제대로 마주한 적 없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사막과 도시, 전통과 급격한 근대화,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역사-아랍에미리트 현대미술은 하나의 이미지로 환원되지 않는 복합적 풍경임을 드러낸다.

특히 전시는 7개의 토후국이 결합된 국가 특유의 복합성과 세대적 층위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사막 위에 도시가 세워지고, 허허벌판이던 땅 위로 건물들이 압도적인 속도로 솟아오른다. 전시장에 걸린 사진과 영상에는 굴착기, 공사 현장, 노동자의 장갑에 묻은 모래, 좌표와 시간으로 기록된 장소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는 미래 도시의 찬가라기보다 변화의 압력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감각 기록에 가깝다.

이 빠른 속도의 풍경은 한국 관객에게도 낯설지 않다. 압축 성장을 경험한 한국 사회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김은주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한국의 부모 세대가 젊은 시절 겪었던 변화의 속도를 아랍에미리트의 현재에서 겹쳐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아랍에미리트 작가들이 보여주는 세계는 한국 관객의 섬세한 미감과도 충분히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15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 현대미술전 '근접한 세계'전시 기자 간담회에서 마야 엘 칼릴 아부다비 음악예술재단 큐레이터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25.12.15.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마야 엘 칼릴 아부다비 음악예술재단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지역적 특수성과 국제적 해독 가능성 사이에서 아이디어가 이동과 번역을 거치며 어떻게 변화하고 충돌하는지를 탐색한다”며 “각 섹션은 서로 다른 만남의 방식을 제안하지만, 이들은 분리된 범주가 아니라 하나의 별자리처럼 연결돼 작동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총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젊은 세대부터 선구적 작가,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세대까지, 아랍에미리트 현대미술이 어떻게 연결되고 소통해 왔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현대미술이 특정 지역의 담론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의 감각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마야 엘 칼릴 아부다비 음악예술재단 큐레이터와 김은주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가 근접한 세계 전시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2025.12.15.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라민·로크니·헤삼으로 구성된 트리오 ‘RRH’의 작업은 이러한 사고를 집약한다. 이들의 생활 공간이자 작업 공간은 영화 세트이면서 도서관이고, 박물관이자 퍼포먼스의 장이다.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되는 ‘과정으로서의 작품’이다. 혼종적 관점으로 구성된 집단적 실천은 예술이 특정 장르나 제도에 귀속되지 않는 상태를 보여준다.

3층 전시장은 이들을 ‘양서류 세대’로 명명한다. 과거와 현재, 안과 밖, 삶과 형식 사이를 오가며 사고하는 방식이다. 넬슨 굿맨의 질문, “언제 무엇이 예술이 되는가?”를 따라가며 전시는 예술을 특별한 대상이 아니라 삶의 조건과 사건이 맞물리는 순간 발생하는 사고의 도구로 제시한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하산 샤리프(Hassan Sharif), 케이블 작품등이 전시된 3층 전시장. *재판매 및 DB 금지

모하메드 카짐(Mohammed Kazem)이 2년에 걸쳐 진행된 프로젝트로 '창 2003–2005'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2025.12.15.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전시는 아랍에미리트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사회가 이미 지나왔거나 여전히 통과 중인 질문들을 다른 좌표에서 다시 보게 만든다. 빠른 발전이 개인의 삶에 남기는 흔적, 변화 속에서 조정되는 정체성, 기록되지 않는 감정은 어떻게 이미지가 되는가. 전시는 이 질문들을 답하지 않은 채, 관객에게 넘겨준다.

2026년 3월 29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예약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과 도슨트 해설도 운영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