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제노역 피해 정신영 할머니, 광복 80년 만에 나고야 방문

기사등록 2025/12/04 09:59:27 최종수정 2025/12/04 10:18:25

강제노역 소송 지원 단체·투병 중 대표 면담

7일 도난카이 대지진 희생자 추모식 참석도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일제강제노역 피해자 정신영(94) 할머니가 18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 별관 앞에서 취재진들을 향해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승소와 관련한 소감을 이야기하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2024.01.18. leeyj2578@newsis.com
[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일제강점기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 강제동원돼 모진 고역을 치른 정신영(95) 할머니가 광복 80년 만에 나고야를 다시 찾는다.

4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따르면 일제강제노역 피해자인 정 할머니는 6일부터 8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강제징용 현장이었던 일본 나고야를 방문한다. 1945년 10월께 고향 전남 나주로 돌아온 이후 80년 만이다.

정 할머니는 나고야에서 근로정신대 관련 소송을 돕고 있는 '나고야소송지원회' 회원들과 투병중인 다카하시 마코토 소송지원회 대표를 만날 예정이다.

또 1944년 나고야 도난카이 대지진으로 숨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7일 열리는 도난카이 지진 81주기 희생자 추도식에도 참석한다.

1930년 나주에서 태어난 정 할머니는 1944년 나주대정국민학교 졸업 직후인 그해 5월 만 14세 나이에 '일본에 가면 좋은 학교도 다니게 해주고 밥도 잘 준다'는 말에 속아 미쓰비시 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끌려갔다.

강제노역 현장에 동원돼 착취당하던 중에는 도난카이 대지진을 겪어 고향에서 함께 끌려온 친구 6명이 숨지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정 할머니를 비롯한 강제노역 피해자들은 1945년 도야마 미쓰비시 공장에서 일하던 중 광복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정 할머니는 가족들의 장래에 지장이 될까 싶어 징용 피해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다.

이후 자신의 명예를 되찾고 일본으로부터 사죄를 받기 위해 2020년 손해배상 소송에 참여했으나 미쓰비시 측이 재판에 참여하지 않는 등 훼방을 놓으면서 판결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지난 2022년에는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일본연금기구가 정 할머니에게 '후생연금 탈퇴수당' 명목으로 고작 931원(99엔)을 송금한 사실이 알려져 공분이 일기도 했다.

화폐 가치 변동을 보전하지 않고 당시 기준 77년 전 액면가만 지급하면서 당시 '악의적인 모욕', '고령의 피해자에 대한 우롱' 등의 성토가 잇따랐다.

정 할머니는 손해배상 소송 시작 4년여 만인 지난해 1심에서 일부 승소했으나 미쓰비시 측이 항소하면서 광주고법에 계류 중이다.

정 할머니는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지진 당시의 공포와 폭격기 굉음 소리는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며 "(대지진 희생자 추모식 참석에 대해) 이제는 지팡이를 짚어야 움직일 수 있지만, 죽기 전에 그때 억울하게 죽어간 친구들 흔적이라도 찾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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