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부, '차기 연준 의장'에 대한 월가 은행·자산운용사 의견 수렴
채권시장, 금리 급격 인하 우려에… 달러 가치도 '출렁'
[서울=뉴시스]박미선 기자 = 채권 투자자들이 케빈 해싯 미국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차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유력 후보로 부상하자, 미 재무부에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자들은 해싯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맛에 맞춰 공격적인 금리인하에 나설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3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복수의 소식통은 인용해 미 재무부가 주요 월가 은행·대형 자산운용사·기타 미국 채권 시장 핵심 인사들과 개별 면담을 통해 해싯 위원장을 비롯한 차기 연준 의장 후보들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수렴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논의는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후보들과 진행한 두 번째 면접에 앞서 지난달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재무부는 "정기적으로 다양한 시장 참여자 및 투자자들과 재무부 시장과 광범위한 금융 시장 전반의 주요 동향을 논의하고 있다"며 "주요 이해 관계자들과의 논의에서 5명의 잠재적 연준 의장 후보들에 대한 시장 반응의 기대 범위는 매우 좁았다"고 밝혔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차기 연준 의장 후보를 사실상 한 명으로 좁혔다며, 해싯 위원장을 "잠재적(potential) 연준 의장"이라고 언급했다. 이 발언 이후 외환시장에서 달러 가치를 일시적으로 하락했다.
백악관은 FT에 "대통령은 연방 정부에 가장 적합한 인물들을 계속 지명할 것"이라며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 잠재적 후보에 대한 논의는 모두 추측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재무부도 "트럼프의 선택이 미국 국민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시장 참여자들은 해싯이 트럼프 대통령과 지나치게 밀착돼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급격한 금리 인하를 주장해왔으며, 올해 연준이 기준금리를 소폭만 인하하기로 결정하자 파월 의장을 "고집불통 노새"라고 비난한 바 있다. 연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비판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는 해싯도 지난주 폭스뉴스에 출연해 "만약 내가 지금 연준을 운영한다면 즉시 금리를 내리겠다"며 "데이터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은행가와 투자자들은 해싯이 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를 상회하는 물가 상황에서도 무차별적인 완화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다고 경계한다. 한 시장 참여자는 "아무도 '트러스 사태'를 겪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2022년 당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재원 마련 방안이 없는 감세 계획을 발표하며 채권시장이 붕괴했던 사례를 언급한 것이다.
특히 내년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재차 상승할 경우, 비둘기파 성향의 연준 의장 등장 자체가 대형 채권 운용사들에 가장 큰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한 시장 참여자는 완화적인 통화 정책과 높은 인플레이션이 맞물릴 경우 장기 국채 대규모 매도세가 촉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해싯이 분열된 연준 이사회를 설득해 정책 공조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내놓고 있다.
전 연준 이코노미스트이자 현재 뉴 센추리 어드바이저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클라우디아 삼은 "해싯은 연준 의장직을 수행할 능력이 충분하다"면서도 "문제는 그가 어떤 모습으로 남을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전면에 나섰던 정치인 참모 해싯일지, 독립적인 경제학자 해싯일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자산운용사 나인티 원의 존 스톱포드 역시 "시장은 그를 트럼프의 꼭두각시로 보고 있으며, 이는 연준의 신뢰도를 점진적으로 깎아내릴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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