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사과한 경찰, '국경위·자치경찰' 개혁 완수 과제[계엄 1년]

기사등록 2025/12/04 07:00:00 최종수정 2025/12/04 07:52:24

경찰 지휘부, 위헌 인정하고 13만명 헌법교육 확대 나서

국경위 실질화·자치경찰제 전면화는 제자리

전문가 "승진·계급 체계 개편 없이는 중립성 확보 어려워"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경찰들이 국회의원, 의원 보좌진, 취재진,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2024.12.03. 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 비상계엄 사태 1년을 맞아 경찰이 국회 출입 통제를 위헌 조치로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경찰 개혁 과제에 드라이브를 걸 태세다.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제시한 국가경찰위원회(국경위) 실질화, 자치경찰제 전면 시행 등 핵심 개혁 과제의 진척이 더딘 만큼 계엄 1년을 계기로 속도를 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학계에서는 사과와 교육을 넘어 근본적으로 경찰 권력을 견제할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 선포 직후 여의도 국회는 전면 통제됐다. 경찰은 총기를 든 계엄군에겐 길을 터줬지만, 계엄 해제를 추진하던 국회의원들은 막아섰다. 국회의장도 경찰을 피해 국회 담장을 넘어 이동해야 했다. 국회 주변에는 3000명 이상의 경력이 배치됐다. 일부 시민·의원 출입이 제지되면서 위헌 논란이 제기됐다.

1년 뒤 경찰 지휘부는 당시 조치가 위헌·위법했다고 공식 사과했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지난 1일 전국 지휘부 화상회의에서 "국회의원 출입 통제는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어지럽힌 위헌·위법 행위였다"며 "일부 지휘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국민께 실망을 드렸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경찰청은 계엄 사태 1년을 맞은 지난 3일 헌법재판연구원과 '헌법교육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교육과정 공동개발과 강사 지원을 포함해 전 경찰 13만 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지휘·통제 체계 전반을 다시 점검하겠다는 취지다.

이처럼 경찰이 지휘·통제 체계 전반을 점검하겠다고 밝혔지만,개별 현장 경찰관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동원된 개별 경찰관에게 책임을 묻기는 무리"라며 "현장에서 위법 명령을 거부하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제는 지휘부 판단이며, 이를 견제할 구조적 장치가 약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경위 실질화 '표류'…자치경찰제도 제자리

비상계엄과 탄핵을 거쳐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경찰 개혁 논의도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정부는 출범 이후 국정과제로 국경위의 심의·의결 기능 강화를 제시했다. 사실상 자문기구에 머물러 있는 현재 구조를 손봐 경찰권이 특정 정권 영향권에 놓이지 않도록 실질적인 통제기구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경찰법 개정안은 22대 국회에서 심사 진척이 없는 상태다. 국경위 실질화는 문재인 정부 초기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도 논의됐지만, 인사·정책에 실질적 통제권을 부여하는 문제는 정권마다 민감한 사안으로 분류되며 지연이 반복돼 왔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위원 구성·권한·독립성을 전면 재설계하지 않으면 실질적 통제기구가 되기 어렵다"며 "정치권이 경찰을 영향권에 두려는 구조가 이어지면서 개혁이 지연돼 왔다"고 말했다.

국정과제에 포함된 자치경찰제 전면 시행 역시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2021년 도입 당시 '주민 밀착형 치안' 강화를 목표로 했지만, 제도 설계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다.

감사원은 최근 정기감사에서 "자치경찰제 시행 이후 경찰권 분산 효과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자치경찰사무는 여전히 국가경찰이 사실상 지휘하는 구조이며, 자치경찰위원회 역시 권한 행사에 소극적이었다는 것이다. 인사·감사권도 실질적으로 국가경찰이 주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치경찰제의 실효성 없이 국경위 실질화만 추진할 경우 통제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윤호 교수는 "자치경찰제는 구조만 분리돼 있을 뿐 권한·인력 배분이 뒷받침되지 않아 실질적 통제가 어렵다"며 "국경위 실질화도 자치경찰제가 제 기능을 갖춰야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구조 안 바꾸면 재발"…계급·인사 개편 목소리

전문가들은 이번 위헌 논란이 단순한 판단 오류가 아니라 지휘·감독 권한이 특정 라인에 집중된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승진·평가·보직이 모두 중앙 권력에 연결돼 있는 현 체계에서는 위법·과도한 지시를 현장에서 걸러낼 안전장치가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승진 중심 구조가 유지되는 한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며 "현장 중심 서비스 조직으로 정체성을 바꾸고 계급 체계 축소 논의까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도 "정책 결정 라인과 지휘체계 자체가 중앙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어 구조적으로 위법 지시를 걸러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지휘·감독 권한을 분산하고 인사 권한을 일정 부분 외부 견제 장치와 연계하는 논의가 병행돼야 실효성이 생긴다"고 했다.

계엄 당시 위헌 논란이 불거진 배경 역시 지휘·감독 권한이 특정 라인에 집중된 구조적 문제와 무관치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장영수 명예교수는 "경찰 지휘체계는 평상시에도 민주적 견제 장치가 작동해야 한다"며 "상명하복 중심 구조에서는 비상 상황에서 위법 지시를 제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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