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통상본부장, 2박3일간 유럽 방문
내년 상반기 차세대 전략대화 출범 합의
철강 TRQ 적용 배제·쿼터 확보 필요 강조
체코 원전사업 보조금 조사에 '우려' 전달
[세종=뉴시스]여동준 기자 = 산업통상부가 유럽연합(EU)에 철강 관련 한국산 쿼터 확보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관련 이중규제 방지 등을 요청했다.
산업부는 지난 1일부터 사흘간 유럽을 방문한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EU 고위 관계자들과 면담을 가졌다고 3일 밝혔다.
이번 방문은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공급망 재편 등 급변하는 통상환경 속에서, 한국과 EU가 전략적 파트너로서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우리 기업의 EU 시장 진출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마련됐다.
양측은 한국과 EU가 자유무역과 시장경제라는 공동의 가치를 기반으로 긴밀히 협력해온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공급망, 보호무역주의 확산, 탄소중립 이행 등 국제 통상질서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긴밀한 소통을 통해 주요 현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공급망·디지털·경제안보 분야 협력을 한층 심화해나가기로 했다.
여 본부장은 ▲한–EU 미래지향적 협력 프레임워크, ▲EU의 신규 철강수입규제(TRQ) 도입 계획 ▲배터리규정 ▲CBAM ▲체외진단 의료기기법 ▲외국보조금 규정(FSR) ▲한–EU 디지털통상협정(DTA) 등 주요 통상현안과 향후 협력 방안을 폭넓게 논의했다.
우선 양측은 이번 회담에서 현재의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체제가 상품·서비스 교역 중심의 전통적 구조에 머물러 있어, 디지털·공급망·경제안보 등 급변하는 통상환경의 새로운 전략적 이슈를 포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
특히 미·중 패권 경쟁 심화와 신흥 안보 위협 등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서, 기존의 틀을 넘어 협력 구조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에 우리측은 한–EU 협력의 실질적 고도화를 위한 양대 축을 제시했다.
첫 번째 축은 제조·산업 분야 잠재적 위험 관리로, EU 내 한국 기업이 직면한 경영 애로와 규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상호 투명성에 기반한 예측 가능한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두 번째 축은 신흥 분야 미래협력 강화로, 디지털·공급망·경제안보 등 신통상 분야에서 공동 의제를 도출하고 고위급 교류를 통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협력 성과를 창출해 나가는 것이다.
양측은 이러한 추진 방향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존 장관급 FTA 무역위를 확대·개편해 내년 상반기 한–EU 차세대 전략대화를 출범시키기로 합의했다.
새로 출범할 전략대화는 경제안보·공급망·첨단 기술 이슈를 포괄하는 최상위 전략 협의체로, 단순한 무역 협의를 넘어 기술 패권 경쟁과 복합 위기에 공동 대응하는 핵심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게 될 예정이다.
EU가 오는 2028년 6월 철강 세이프가드 종료 이후 도입을 추진 중인 신규 수입규제와 관련해서는 우리 업계의 입장과 우려 사항을 상세히 전달했다.
우리측은 한국이 자동차·가전 등 EU 내 주요 산업에 고품질 철강을 공급하며 EU 경제 성장과 고용 창출에 기여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EU 측의 신규 조치가 국제 통상 규범에 합치하는 방식으로 추진돼야 함을 강조했다.
또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을 위해 설비 조정·저탄소 전환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음을 설명하며 신규 조치가 도입되더라도 한국은 최우선 협력 대상국이 돼야 하므로 한국산 철강 수출 물량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저율할당관세(TRQ) 적용 배제 또는 쿼터 확보 등 각별한 배려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EU 측은 한국을 우선 협상대상국으로 고려하고 있으며, 쿼터 배분 시 한국의 기여를 고려해 나가겠다고 언급했다.
배터리 분야에서는 헝가리, 폴란드 등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우리 기업들이 EU 내 첨단 배터리 생산과 공급망 강화의 주역임을 강조하며 이에 상응하는 지원을 촉구했다.
구체적으로는 배터리법 후속 이행규정의 조속한 확정과 옴니버스 패키지 등 다른 EU 정책과의 정합성 고려, 에너지 집약 산업에 배터리 분야를 포함해줄 것 등을 요청했다.
보리스 부드카 산업연구위원장은 유럽 내 배터리 생산 능력의 약 절반이 한국 기업에 의해 구축돼있다며, 사실상 유럽과 한국은 배터리 공급망에서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급망 안정성 강화를 위해 향후 한–EU 공동 생산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배터리 공급망 중심의 실질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내년 1월 본격 시행을 앞둔 CBAM에 대해 우리 측은 최근 CBAM 본법 개정 과정에서 한국이 제기한 인증서 요건 완화 및 중소업체 면제 기준 신설 등이 반영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양자 소통을 통한 제도 개선 노력에도 환영의 뜻을 표했으나 배출량 산정 방식, 검증기관 인정기준 등 핵심 하위규정의 발표가 지연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무역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관련 규정을 조속히 확정·공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CBAM 적용 대상이 하류재까지 확대될 경우, 공급망 하단부에 위치한 중소기업에 과도한 부담이 전가될 수 있는 점을 우려하며, 현행 기본상품에 대한 영향 평가가 충분히 이뤄질 때까지 확대 적용을 중지하고, 향후 검토 시에도 EU ETS 대상 공정은 제외하는 등 합리적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과 같이 배출권거래제를 운영 중인 국가의 경우 이중 규제가 되지 않도록 탄소 가격이 충분히 인정돼야 함을 강조했다.
EU집행위가 한수원의 체코 원전사업 수주 관련 불법 보조금 수령 가능성을 문제 삼아 진행 중인 조사와 관련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우리측은 한수원의 체코 원전 수주는 공정하고 투명한 공개경쟁을 통해 이뤄진 결과라고 강조하며, 시장 원칙에 어긋나는 보조금 지급 사실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이어 EU 측의 신중하고 공정한 처리를 당부하며, 조사가 명백히 불공정하거나 불합리한 결과로 이어질 경우 양측 협력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양측은 한–EU 디지털통상협정이 디지털 교역 활성화와 안정적인 디지털 경제 환경 조성에 기여할 것이라는 데 공감하고, 차기 고위급 교류 계기에 서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각국의 국내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여 본부장은 "이번 브뤼셀 방문이 EU의 신규 철강규제, CBAM, FSR 등 주요 통상현안에 대한 우리 입장을 분명히 전달하고, 배터리·디지털·공급망·경제안보 등 미래지향적 협력 의제를 구체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향후에도 EU와의 고위급·실무급 협의 채널을 적극 활용해 우리 기업의 예측가능성을 제고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통상환경과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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