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상 수상 기념 '연세노벨위크' 참석차 첫 내한
'작은 노벨문학상', 한림원 대상 등 수상…유럽 문단 주목
'죽음이 너에게서 무언가' '어두움의 연습' 국내 번역 출간
"아들 잃고 언어 잃어…같은 고통 위로해주려 언어 되찾아"
"여성의 삶 속 폭력에 집중…일제시대 보낸 한국 공감할 것"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덴마크 작가 나야마리 아이트(62)가 첫 내한에서 한강 작가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2일 서울 중구 스페이스에이드 CBD에서 열린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한강 작가의 작품을 거의 모두 읽었다. 그의 작품을 통해 한국의 역사, 일상, 문화를 접하는 일은 매우 기쁘고 흥미로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아이트는 지난 1일 개막한 '2025 연세노벨위크'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는 "오는 4일 강연도 한강 작품을 중심으로 이야기할 예정"이라고 귀뜸했다.
'2025 연세노벨위크'는 연세대학교가 한강의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컨퍼런스다. 연세대는 한강 작가의 모교다.
덴마크 그린란드에서 태어나 1991년 첫 시집 '내가 아직 젊을때'로 데뷔한 이아트는 시집 30권을 비롯해 소설, 에세이, 희곡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창작을 이어왔다. 2020년 덴마크 한림원 대상, 2024년 스웨덴 한림원 북유럽상(일명 '작은 노벨상')을 받으며 유럽 문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단편집 '바분'으로 2008년 북유럽 이사회 문학상과 덴마크 비평상을 받기도 했다.
아들을 떠나보내고 1년 간의 시간을 담은 에세이 '죽음이 너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갔다면'으로 덴마크 도서 최초로 2019년 내셔널 북 어워드, 커커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한국에서는 올해 이 작품과 소설 '어두움의 연습' 두 권이 번역 출간됐다.
지난달 28일 출간된 '죽음을 너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갔다면'은 그가 2015년 둘째 아들 칼을 잃은뒤 1년간의 기록을 담은 작품으로, 시, 일기, 애도문학 인용 등 독특한 산문 형식을 띤다.
그는 책에서 아들의 죽음 이후 형언할 수 없는 애통함과 상실감으로 집필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당시의 충격을 숨기지 않았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후 충격이 너무 커 말을 할 수 없었고, 글도 쓸 수 없었어요. 완전히 언어를 잃었고, 문학에 대한 희망도 사라졌어요."
그러나 시간이 그를 다시 글로 이끌었다.
그는 "6개월이 지나면서 점점 버스 티켓이나 핸드폰에다 단어를 하나씩 남겨두고, 완전한 문장은 아니지만 조금씩 문장을 조각해 나갈 수 있었다"며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언어를 찾는 시도를 했다"고 전했다.
또 "개인과 사회 간의 거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다. 우린 다 같은 인간이고, 서로의 온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문학은 비극의 극복에 있어서도 도움이 됐다.
"어렵고 힘든 상황을 지나갈 때 문학을 통해 나 자신을 보살폈어요. 애도와 관련된 문학 작품을 찾아 읽고, (책에는) 이 중 일부가 인용됐습니다. 비슷한 상황을 겪은 다른 작가를 찾는 과정 자체가 매우 의미가 있었죠."
시인으로 출발한 그는 산문에서도 언어 실험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그는 "시인으로서 언어에 대한 흥미가 높고, 언어에 대한 주의를 다른 형식의 글에 주입한다"며 "다양한 실험을 산문에 적용했다"며 책의 형식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에 함께 번역 출간된 소설 '어두움의 연습'은 사랑과 보살핌, 무력함과 폭력에 관한 소설이다. 57세의 여성을 앞세워 어린 시절부터 폭력과 학대에 놓였던 그가 점차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여정을 그린다.
여성의 폭력에 집중한 데 대해선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은 아니지만 대부분 여성이 살아가면서 어떤 폭력을 경험한다"면서 "여성 3명 중 1명이 어떠한 폭력을 삶에서 경험한다'는 한 연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 소설을 쓸 때는 우정, 공동체, 인간관계 등에 집중하려다 점차 여성의 생애 주제로 발전했다. 여성의 삶에서 '폭력'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책 속 등장인물은 이름이 없고, 사건이 발생한 시간이나 배경은 언급되지 않는다. 아이트는 이에 대해 "누구나 1인칭 시점에 공감할 수 있고 언제나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역사적으로 폭력의 트라우마가 굉장히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안다. 특히 일제강점기 중에 형언할 수 없는 폭력이 있다는 점에서 한국 독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고통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로는 "작가는 힘든 일로부터 글을 써야하는 의무가 있다. 다양한 질문을 탐구해야 한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등 다양한 탐구가 작가로서 의무"라고 강조했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아이트는 "책 출간 이후 다양한 국가 다니면서 바쁜 시간을 보낸 다음 책의 주제에 대해서 생각 하지 못했다"면서도 "내년 1월에 다시 사무실에 앉아서 생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비슷한 상실을 겪은 이들에게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조금 어리석게 들릴 수 있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줍니다. 저도 처음 칼이 죽었을 때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매년 비통함의 물결이 조금씩 낮아졌어요. 엄청난 감정의 폭풍우가 조금씩 줄어 들었고, 무엇보다 인간은 트라우마를 이기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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