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노조 논쟁, '정치 경찰' 우려부터 풀어야[기자수첩]

기사등록 2025/11/26 10:00:00 최종수정 2025/11/26 10:44:25

치안과 중립성 걱정 여전한데…현장 피로 누적

관건은 치안 훼손 없는 제도 설계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 경찰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을 허용하는 법안이 다시 국회에 올랐다.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이 발의한 '경찰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용 등에 관한 법률안'은 경찰관에게 노조 설립권과 단체교섭권을 부여하고, 노조 전임자 활동도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의 직장협의회로는 불가능한 실질적 권한을 주겠다는 취지다.

현장에서는 오래전부터 노조 설립 요구가 이어져 왔다. 최근 지역경찰 근무체계 개편 과정에서 나타난 혼란은 이 요구에 힘을 실었다. 4조 3교대 도입을 둘러싼 반발이 반복됐고, 인력 부족 속 장시간 근무는 고착됐다. 근무제 변화나 수당·장비 기준처럼 현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사후 통보'로 전달되면서 의견이 조정 단계에서 반영되기 어렵다는 인식도 깊어졌다. 직장협의회가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협상 기능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경찰 노조 논의가 수십 년간 진전을 보지 못한 이유는 분명하다. 현행 공무원노조법은 군인·소방·경찰의 노조 설립을 금지한다. 경찰은 긴급출동과 사건 대응 등 즉시성이 요구되는 업무의 최전선에 있다. 업무가 늦어지거나 중단되면 국민 안전이 곧바로 위협받는다. 파업권이 금지된다 하더라도 준법투쟁이나 시간 외 근무 거부 같은 간접적 단체행동만으로도 현장 대응력은 쉽게 흔들릴 수 있다. 경찰 업무에서 '지연'은 곧 위험이다.

정치적 중립성 우려도 빼놓을 수 없다. 외부 노동세력이나 정치 단체와의 연계 가능성은 경찰 조직의 공정성과 분리될 수 없는 문제다. 최근 경찰직협이 양대 노총에 노조 설립 지지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커졌다. 경찰이 특정 세력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는 순간 법 집행의 중립성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현장의 불만도 무시할 수 없다. 장시간 근무와 인력 부족이 고착된 상황에서 근무제 개편 같은 중요한 정책조차 현장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고 진행됐다. 처우 개선을 요구할 통로가 막혀 있으면 내부 불만은 계속 쌓일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조직 사기와 치안 역량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경찰들이 임금·복지 개선을 넘어 '목소리를 낼 권리'를 요구하게 된 이유다.

이 논쟁에서 답해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노조 설립이 최선인가, 아니면 현행 제도 개선으로도 충분한가. 만약 노조 설립을 검토한다면 치안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단체행동권을 어디까지 제한할지, 협상 대상과 비협상 영역을 어떻게 구분할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할 방화벽을 어떻게 만들지 등 구체적 설계가 필요하다. 노조 설립 없이도 현장 의견을 실질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방안 역시 함께 검토해야 할 과제다.

해외에서는 어떨까.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일부 서구 국가에서는 경찰 노조가 존재하지만 파업권은 대부분 제한되거나 금지된다. 지휘·배치·출동 등 핵심 치안 기능은 협상 대상에서 제외되고, 정치 활동 역시 엄격히 제한한다. 노조 활동의 무게 중심을 임금·복지·근무여건에 두어 치안 기능이 흔들리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촘촘히 구축한 구조다. 그럼에도 일부 국가에선 노조 활동이 현장 대응력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례가 보고되기도 한다.

국민 안전과 현장 경찰관의 근무환경 개선. 이 둘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이제는 보다 구체적이고 신중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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