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협상서 '美 기업 차별 대우 금지' 합의
기존 美측 요구 명문화…독점규제법 '부담'
"공정화법 속도…독점규제법 앞설 필요 無"
[세종=뉴시스]여동준 기자 = 한미 양국이 관세 협상을 최종 타결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서비스 분야의 비관세 장벽을 둘러싼 규범까지 합의문에 포함되면서, 국내 플랫폼 독점규제 입법에 대한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미국의 통상 우려를 의식해 독점규제 중심의 플랫폼법 추진 속도를 조절해온 만큼, 이번 합의가 향후 입법 방향에 제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19일 정부 등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전략투자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집행하는 대신 미국은 자동차·부품 및 목재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15%로 낮추고 향후 부과가 예고된 의약품은 15%의 관세율 적용, 반도체는 대만과 동등한 조건을 보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이 미국 기업을 국내 기업보다 불리하게 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 역시 합의됐다.
미국이 우리나라의 플랫폼법과 관련해 계속해 요구해 온 내용이 공식화된 것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매년 발표하는 무역장벽 보고서(NTE)에는 플랫폼 규제가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항상 언급되고 있다.
미국 하원의 공화당 의원 43명은 지난 3일 USTR과 미국 재무부·상무부에 서한을 보내 우리나라의 플랫폼법이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을 모방해 미국 기업에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디지털 기업을 규제하는 모든 국가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자 EU는 실제 보복 관세를 부과한다면 미국과의 무역 협정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맞불을 놓는 등 갈등이 표출됐다.
이번 관세 합의 내용에 디지털 서비스 규제 관련 내용이 명문화되면서 플랫폼 독점규제 입법에 적지 않은 부담이 더해질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추진돼 온 플랫폼 독점규제법은 그동안 사실상 멈춰선 상태였다.
공정위는 일정 기준을 만족하는 지배적 사업자의 자사우대·끼워팔기·멀티호밍 제한·최혜대우 요구 등 4대 반경쟁 행위를 규율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지난해 공식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계엄 이후 탄핵 및 대선 국면을 맞으며 입법 논의가 중단됐고, 대선 이후에도 미국의 통상 압박으로 인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공정위는 그동안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 없이 국적과 무관하게 동등한 원칙과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하면서도 독점규제법 추진 대신 통상 마찰이 우려가 적은 거래공정화법만을 우선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거래공정화법은 입점업체에 대한 플랫폼의 불공정행위를 규율하는 법으로, 구글이나 메타 등 미국 기업에 대한 규제 효과가 적어 통상 마찰 우려가 약하기 때문이다.
주병기 공정위 위원장은 "갑을관계 개선과 관련된 (플랫폼) 공정화법은 가능한 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플랫폼 독점규제법에 대해서는 "독점규제와 관련해서는 공정위 입장에서 통상 협상과 독립적으로 안을 준비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통상과 관련 있는 이슈이기 때문에 공정위가 앞서갈 필요는 없는 상황"이라고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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