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완전무결한가, 그 확신은 얼마나 갈까…연극 '트랩' [객석에서]

기사등록 2025/11/16 10:00:00 최종수정 2025/11/16 10:04:24

단편소설 '사고' 원작…'재판 놀이' 통해 인간의 위선 드러내

관객에 많은 생각거리 남겨…묵직한 주제에도 곳곳 웃음 배치

1년 만에 재연, 박건형 합류…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공연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여유로운 얼굴로 "완전무결"을 주장하던 이 남자,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제가 살인을 했습니다"라고 외친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7일 개막한 연극 '트랩'은 세계적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단편소설 '사고'를 원작으로, 우연히 벌어진 '재판 놀이'를 통해 인간의 죄와 위선을 드러낸다.

이야기는 섬유 회사 판매 총책 트랍스가 출장길에 차가 고장 나 시골마을의 한 저택에 머물게 되며 시작된다.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집주인은 트랍스를 크게 환영하며 저녁 만찬에 초대한다.

그런데 이 만찬에 모인 이들의 면면이 심상치 않다. 전직 판사였던 집주인을 비롯해 은퇴한 검사 초른과 변호가 쿰머, 사형집행관이던 필렛까지.

이들은 트랍스에게 모의법정 놀이를 제안하고, 트랍스는 피고 역할을 맡는다. 초른이 "죄를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건네도,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트랍스는 여유만만이다.

만찬 자리답게 이들의 대화에는 고급 코스 요리와 와인이 곁들여진다.

배우들은 실제로 음식을 먹고, 와인처럼 보이는 음료를 연신 마시며 연기한다. 식사와 심문, 현실과 놀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다.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공연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맛있는 음식에 와인까지. 트랍스는 관객보다 먼저, 더 쉽게 마음의 빗장을 허문다. 악독한 상사였던 기각스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초고속으로 승진한 이야기부터 그의 아내와 불륜 관계를 이어왔다는 사실까지 술술 털어놓는다.

 "죄가 없는데 뭐가 겁납니까"라던 초반의 당당함을 떠올리면, 그의 고백은 더 깊은 불편함을 남긴다.

추궁을 거듭하던 초른은 트랍스의 고백에 더욱 힘을 얻어 그를 기각스의 살인범으로 몰아붙인다.

초른의 해석에 트랍스는 황당해하지만, 자신의 욕망과 양심을 되돌아보며 어느 순간 자신이 '살인자'라고 인정한다.

판사를 맡은 집주인도 "피고는 살인자"라고 결론짓는다. 그는 "악의적 계획에서 나온 살인은 아니"라면서도 "피고 자신이 몸담고 사는 이 세계가 고장이 난 것, 즉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데서 발생한 살인"이라고 판결을 내리고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자 트랍스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한다. 기묘한 모습에 객석에선 웃음이 터지지만, 마냥 웃을 수는 없다. 이어지는 트랍스의 마지막 '선택'까지, 관객은 어쩌다 그가 '덫'에 빠지게 됐는지를 되짚어보게 된다.

모의재판 놀이를 제의한 이들이었을까, 누군가를 끝까지 몰아붙이고 이를 당연히 여기는 사회일까, 아니면 도덕과 양심의 가치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트랍스 자신이었을까.

작품은 관객에게 '당신은 정말 완전무결한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곳곳에 웃음을 배치한 균형감은 작품의 강점이다.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공연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트랩'은 지난해 초연하고, 올해 재연으로 다시 선보인다. 트랍스 역에 새롭게 합류한 박건형은 평범한 남자가 스스로 살인자의 낙인을 찍게 되는 감정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관록의 배우 남명렬과 손성호, 강신구, 김신기, 이승우 등이 빚어내는 호흡도 조화롭다.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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