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사활이 걸린 미·중의 AI 냉전-WSJ

기사등록 2025/11/12 08:50:48

컴퓨터 경쟁에서 미국이 소련에 승리

세계 발전 주도권 장악해 우위 확보

컴퓨터보다 큰 파급력 가진 AI 개발

미·중 초조감 속에 치열한 경쟁

[베이징=AP/뉴시스]28일 중국 수도 베이징의 한 사용자 휴대전화 화면에 딥시크(DeepSeek)와 챗GPT(ChatGPT)의 애플리케이션이 보이고 있다. 딥시크는 중국의 AI 개발에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2025.11.12.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AI 냉전이 모든 것을 바꾼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 미국과 중국의 AI 기술 개발 경쟁 현황을 보도하는 기사에 단 제목이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은 수십 년 동안 컴퓨터 개발 경쟁을 벌였다. 경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세계 경제 발전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전쟁 방식의 변화를 주도하면서 우위에 설 수 있었다.

미국과 중국의 AI 개발 경쟁도 미소의 컴퓨터 개발 경쟁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미국과 중국은 AI 경쟁에서의 승리에 체제 사활적 이해관계를 갖게 됐다.

WSJ는 양국의 AI 개발 경쟁 현황을 조목조목 짚었다. 다음은 기사 요약.

◆중국의 초조감

중국의 지도자들은 AI 기술이 오픈AI, 구글 등 미국 기업들에 의해 지배되면서 초조하고 답답했다.

지난해 초만 해도 중국의 AI 기술은 미국보다 크게 뒤처쳐 있었다.

많은 중국 기업들이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메타 플랫폼스의 오픈소스 모델 ‘라마(Llama)’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더해 미국이 첨단 AI 칩 수출을 제한하면서 중국이 더 뒤쳐질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중국 정부가 자국 기술기업들을 압박했다. 한 주요 중국 AI 기업은 “1개월 사이 정부 부처 10곳이 중국 고유의 AI 모델을 개발하라고 촉구하는 전화를 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규제를 완화하고, 자금을 풀었으며, 컴퓨팅 자원을 서둘러 구축하기 시작했다.

◆딥시크의 화려한 등장

9개월 뒤,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강력한 신형 AI 모델로 실리콘밸리를 놀라게 했다.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리창 중국 총리는 “중국에도 마침내 자랑스러워할 만한 모델이 생겼다”고 희망찬 목소리를 냈다.

딥시크를 계기로 중국의 기술 산업이 힘을 받으면서 정부의 지원이 한층 강화되고 미국과 경쟁이 폭발적으로 가속화됐다.

AI 경쟁은 냉전 시대의 기술 경쟁 못지 않은, 혹은 그보다 더 파급이 클 수 있는 거대한 충돌이다.

이 경쟁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기술 투자 열풍을 촉발해 미국과 중국의 주식시장을 부양하고 새로운 경제 성장의 원천을 열었다. 동시에 글로벌 AI 거품에 대한 우려도 키우고 있다.

◆제한 없는 AI의 파급력

AI 경쟁이 산업과 사회, 지정학까지 변혁시킬지 모른다.

각국 지도자들은 AI가 가져올 위험에 대한 우려를 뒷전으로 밀어놓고 있다. JD 밴스 미 부통령은 지난 2월 파리 연설에서 “AI의 미래는 안전 문제에 손만 비비고 있을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중국의 AI 경쟁은 뒤쳐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강박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중국의 ‘권위주의적 AI’ 방치된다면 미국의 기술 우위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반면 중국은 AI 경쟁에서 뒤지면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좌절시킬 수 있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있다.

◆미국의 우위와 중국의 추격

현재로선 미국이 분명한 우위를 점하고 가장 강력한 AI 모델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첨단 반도체 제조에서 중국보다 앞서고 있고 올 상반기에만 1040억 달러(약 152조 원)가 AI 스타트업에 투자되는 등 민간 투자자들의 막대한 자금력이 중국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유능한 엔지니어 인구가 방대하고 비용이 낮으며 국가가 주도하는 기술 개발 속도가 빠르다.

중국은 대규모 태양광 및 풍력 발전 단지가 있는 내몽골에 컴퓨팅 클러스터 건설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곳에 수백 개의 데이터센터를 연결해 2028년까지 하나의 공유 연산망을 구축하려 한다. 이른바 ‘국가 클라우드’다. 중국은 또 AI의 훈련과 활용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력망에 수천 억 달러를 투입하고 있다.

미중의 AI 경쟁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단순히 더 많은 돈을 쓰는 것만으로 승자가 결정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이 먼저 선도하도록 두었다가, 시간이 지나 노하우가 확산되면 뒤따라 추격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AI 전략도 같은 방식이 적용된다.

미 외교협회(CFR)의 크리스 맥과이어 선임 연구원은 미국의 우위가 ‘수년’이 아니라 ‘수개월’ 정도라고 지적했다.

챗봇 아레나(Chatbot Arena)라는 순위 평가 플랫폼에 따르면, 중국의 AI 모델들은 검색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코딩부터 영상 생성까지-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또 중국의 제조업 부문은 로보택시, 자율 드론, 인간형 로봇 등을 통해 AI를 물리적 세계에 적용하는 속도에서 미국을 훌쩍 앞서가고 있다.

◆냉전의 메아리

냉전시대 미국은 수십 년 동안 소련과 컴퓨터 기술 경쟁을 벌였다.

미국이 승리한 이 전쟁에서 미국의 군대, 대학, 기업들이 컴퓨터 혁신을 만들어냈고 세계 경제 전반을 뒤바꿨으며 전쟁 방식을 재정의하고 전 세계 시민들의 일상생활까지 혁신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지도자들은 AI 경쟁이 컴퓨터와 인터넷보다 더 파괴력이 큰 혁명적 기술로 간주한다.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고 스스로를 개선할 능력을 갖춘 AI가 등장하면 이를 장악한 나라가 과학적, 경제적, 군사적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막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만큼, 해킹과 사이버 스파이 활동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중국의 서로에 대한 불신이 커질수록 극단주의 단체가 AI를 이용해 생물무기를 개발하는 등의 파괴적 행위를 막으려는 협력은 어려워질 것이다.

본격적인 냉전이 재연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중국의 비전

시진핑 중국 주석은 2017년 2030년까지 중국이 세계 AI의 선두주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가 인공지능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인공지능이 정부의 감시 역량의 핵심인 안면인식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잠재력에 주목했다.

2022년 말 오픈AI의 챗GPT가 등장하면서, AI가 추적과 감시를 넘어 사상의 유통과 조작에도 이용될 수 있음을 보였다.

중국 정부로서는 AI의 이 같은 잠재력이 한편으로는 매혹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초기에 중국 지도부는 본능적으로 신중하게 대응했다.

챗GPT가 출시된 지 몇 달 후, 중국은 세계 최초로 딥페이크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를 도입했고 생성형 AI 모델의 입력과 출력을 검열하는 규칙을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의 생성형 AI 시스템이 갈수록 강력해짐에 따라, 중국은 차세대 기술 도약에서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중국 기술기업들이 정부에 규제완화를 요청했고 기술 기업들에 대한 규제가 크게 완화됐다.

2023년 말 미국이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를 강화하면서 중국 지도자들이 AI 개발 지원을 크게 확대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사이버공간 관리기관이 해외 컴퓨팅 자원을 활용해 AI를 훈련시키는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풀기 시작했다.

또 국가자본주의의 엔진이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다. 12개 이상의 지방정부가 컴퓨팅 자원을 낮은 가격으로 연구자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밖에도 수많은 지원 정책이 펼쳐졌다.

올해 초 마침내 돌파구가 열렸다. 당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기술 대기업이 아닌 헤지펀드 자금으로 독자 운영되는 딥시크가, 문제 해결 능력은 오픈AI의 챗GPT에 필적하면서도 비용은 극히 적은 AI를 개발해낸 것이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이 스타트업이 순식간에 미국을 따라잡으려는 중국 AI 전략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딥시크 효과

딥시크 모델이 출시된 지 한 달 후, 시진핑이 딥시크의 량원펑 CEO를 비롯한 기술기업 경영진들과 회의를 열고 AI 기술이 중국의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회의 직후 알리바바가 지난 2월 앞으로 3년간 530억 달러를 일반인공지능(AGI) 개발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이 더 이상 수세적으로 대응하지 않겠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딥시크의 등장에 자극받은 오픈AI가 지난 1월 첨단 반도체나 자금 등 미국의 자원을 중국 관련 프로젝트에서 철회하고 미국의 “민주적 AI”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미국 연구자들이 발표한 “AI 2027” 보고서는 중국과 경쟁에서 뒤쳐질 것을 우려하는 미국의 지도자들이 AI 안전을 강화하길 주저하면서 오는 2030년 미국과 중국의 AI 초지능이 힘을 합쳐 인류로부터 지구의 통제권을 빼앗고 인류를 거의 전멸시킬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정부는 지난 7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한층 강화한 ‘AI 행동계획(AI Action Plan)’을 발표했다.

시진핑도 ‘AI 플러스(AI Plus)’라는 방대한 AI 청사진을 내놓았다. 이 문서는 미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AI를 통해 “인간의 생산과 생활의 패러다임을 재구성하겠다”고 천명했다. 2027년까지 중국 경제의 70%, 2030년까지 90%에 AI를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칩 개발 경쟁

중국이 미국의 최첨단 반도체를 따라 잡으려면 최대 10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이 중국에 넘어가는 것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자체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강화했다.

중국 정부는 바이트댄스 같은 기업들에게 엔비디아 제품 구매를 중단하고 중국 반도체 회사들과 협력해 AI를 구축하도록 압박했다.

화웨이는 지방정부 여러 단계의 조율 아래 수천 개의 로컬 기업들과 협력해, 최대 백만 개의 칩을 묶어 연산 능력을 높이는 시스템을 포함한 첨단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화웨이는 이 방식이 전력 소모는 더 크지만 엔비디아의 최고 시스템과 성능이 대등하다고 밝혔다.

시진핑이 지난달 첨단 반도체 제조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비상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공언하면서 첨단 기술 자립 5개년 계획을 제시했다.

미국도 여전히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엔비디아와 다른 기업들이 반도체 기술의 한계를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이 이를 쫓아가려면 미국이 반세기 이상 앞서 쌓아온 격차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러나 발전된 칩을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기업들이 AI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데도 성능이 정체된다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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