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중 국민 기본권 제대로 보장 못했다" 사죄
백씨 부녀 무죄 확정 수순…16년 전 사건 진범 찾을까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2009년 발생한 이른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으로 중형이 확정됐다가 16년 만의 재심에서 무죄를 인정받은 부녀(父女)에 대해 검찰이 상고를 포기했다. 이에 따라 부녀의 무죄 판결은 확정된다.
검찰은 4일 "광주고법이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재심에서 무죄로 판결한 데 대해 재판부의 판단을 겸허히 수용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특히 "당시 검찰 수사 과정에서 객관적 증거 없이 피고인들에게 자백을 유도한 점, 진술거부권을 명확히 고지하지 않았다는 점, 합리적 이유 없이 수갑·포승으로 피고인들을 결박한 상태에서 조사를 진행한 점 등 형사소송법 절차나 피고인에 대한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는 재판부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자세를 낮췄다.
이어 "적법 절차에 따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자세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야 할 검찰이 본연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국민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던 점을 깊이 반성한다"며 "오랜 기간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었을 백씨 부녀와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검찰은 나아가 피고인들에 대한 보상 절차, 명예회복 조치가 신속하고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광주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이의영)는 존속살해 등 혐의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형이 확정됐던 백모(75)씨와 백씨의 딸(41)의 재심에서 각기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발생 16년 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은 것이다.
백씨 부녀는 서로 공모해 2009년 7월6일 전남 순천시 한 마을에서 청산가리를 넣은 막걸리를 아내 최모(당시 59세)씨와 최씨의 지인에게 마시게 해 2명을 숨지게 하고, 함께 마신 주민 2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부녀의 자백 진술에 신빙성이 없는 점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유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2012년 3월 대법원은 2심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백씨에게 무기징역, 딸에게는 징역 20년을 선고해 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범행에 쓰였다는 막걸리 구입 경위가 불확실한 점, 청산 입수 시기·경위와 법의학 감정 결과가 명확히 일치하지 않았던 점, 부녀의 진술 태도와 달리 검찰 작성 조서는 구체적으로 기재된 점 등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재심 재판부도 강압 수사를 통해 확보된 주요 자백 진술의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부녀의 손을 들어줬다.
재심 재판부는 "지적 능력, 학력, 경력, 사회적 지위 등을 살펴볼 때 딸 백씨는 지능지수 74점 정도의 경계성 지능을 가졌다. 그럼에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여러 진술 조서 작성 과정에 신뢰관계자 동석이 이뤄지지 않은 점, 진술 거부권이 고지되지 않은 점, 자백 진술의 개연성을 볼 때 수사기관이 유도 심문을 반복적으로 했던 점이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아버지 백씨의 진술도 "초등학교 중퇴 학력 수준인 데도 모든 조서에 관해 직접 읽어주거나 확인해줬다는 자료가 없고 조서 열람권 보장이 안 된 것으로 보인다"며 적법 절차를 어긴 것으로 판단했다.
부녀의 범행 동기와 공모 관계에 대해서도 "입증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와 정황이 없다. 부녀의 부적절한 관계 관련 진술은 객관적 합리성이 없고 일관되지 않아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백씨 부녀의 법률대리인 박준영 변호사는 선고 직후 "오늘 판결이 무죄 확정을 넘어 가족의 명예 회복까지 나아가길 바란다. 형이 확정되면 가족들과 상의해 형사보상과 국가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이 상고를 포기해 부녀의 무죄가 확정되면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은 다시 장기미제·미검거 사건으로 전환될 전망이다. 진범을 다시 가려내는 수사 개시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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