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뉴시스] 변근아 기자 = 이춘재 연쇄살인 9차 사건 용의자로 몰려 가혹행위 등을 당하다가 병으로 숨진 윤동일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30일 수원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정윤섭)는 윤씨의 강제추행치상 사건 재심 선고공판에서 이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한 직접 증거는 피고인의 자백 진술, 법정 진술 등"이라며 "경찰의 자백 진술은 불법구금, 강압수사로 인한 것으로 의심할 만하고, 저지르지 않은 다른 범죄사실에 대해서도 자백 진술한 점에 비춰보면 이는 신빙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법정 진술 역시 신빙성이 없다"며 "이 사건 증거들은 증거능력이 없거나 그대로 믿기 어려워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어 범죄사실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마지막으로 "고인이 되신 피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 많은 고통을 받았던 유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피고인석에는 고인을 대신해 윤씨의 친형인 윤동기씨와 박준영 변호사가 자리했다. 방청석에도 이춘재 8차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 등이 앉아 재판 결과를 지켜봤다.
선고 직후 친형 윤씨는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까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참았다"면서 "35년 정도 세월이 지난 거 같은데 최종 무죄가 선고나니 마음이 좋다. 동생도 떳떳한 마음으로 홀가분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짧게 선고가 이뤄져 이 사건 의미를 듣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돌아가신 윤동일씨의 명예를 되찾는 의미있는 판결"이라며 "당시 수사 경찰들의 조사 내용을 보면 실적을 언급하는데 수사 과정에서의 절차나 과정이 좀 더 약자를 배려하고 인권적으로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춘재 8차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도 "누군가 잘못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데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그래도 이번에 (고인이) 명예를 회복하니까 좋고 이분도 하늘나라에서 기쁘게 생각하실 것"이라고 했다.
윤씨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중 1990년 11월15일 발생한 9차 사건의 용의자로 불법 연행돼 가족과의 연락이 끊긴 상태서 잠 안 재우기, 뺨 맞기 등 온갖 고문을 당하며 허위 자백을 강요받았다.
수사기관은 DNA 검사 결과 윤씨가 9차 사건 범인이 아님이 밝혀졌음에도 비슷한 시기 발생한 다른 강제추행 사건 범인으로 기소했다.
이후 윤씨는 1991년 수원지법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판결에 불복해 상소했으나 법원이 이를 모두 기각해 1992년 판결이 확정됐다.
윤씨는 석방된 뒤에도 경찰의 지속적인 미행과 감시를 당했고 10개월 만에 암에 걸려 1997년 9월 사망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2년 12월 '이춘재 연쇄살인' 경찰 수사 과정에서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 사건 은폐 의혹 조사를 통해 "윤씨를 포함한 용의자들에 대해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법원은 "과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를 포함한 이 사건 기록 등에 따르면 수사관들은 형사소송법을 위반해 피고인을 불법구금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7월 재심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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