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러시아 제재 승부수…"정치적 압박 분명, 경제 타격은 불확실"

기사등록 2025/10/24 12:14:45 최종수정 2025/10/24 13:02:24

로스네프트·루코일 자산 동결…미·EU 공조 강화했지만 실효성엔 의문

루블화·유가 안정세…인도 변수 주목


[앵커리지=AP/뉴시스] 미국이 러시아 석유 기업에 대한 직접 제재를 가한 가운데, "정치적 경고의 의미는 분명하지만, 러시아 경제에 즉각적인 충격을 주긴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8월 열린 미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2025.10.24.

[서울=뉴시스]박미선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에 후 처음으로 러시아에 대한 직접 제재를 단행했다.

이번 조치가 러시아의 전쟁자금 줄을 실질적으로 조일 수 있을지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정치적 경고의 의미는 분명하지만, 러시아 경제에 즉각적인 충격을 주긴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22일(현지 시간) CNN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최대 석유 기업인 로스네프트와 루코일, 수십 개의 자회사에 대한 대규모 제재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두 회사는 미국 내 보유한 모든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이들과의 거래가 금지된다. 제3국 기업이라도 이들 기업과 거래하면 미국 금융시스템(달러 경제망) 접근이 차단될 수 있다.

로스네프트와 루코일은 러시아 원유 수출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핵심 기업으로, 이번 조치는 러시아 에너지 산업을 정면으로 겨냥한 첫 제재로 평가된다. 또 트럼프 2기 정부 들어 처음으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과 공조해 제재에 나선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영국은 지난 15일 로스네프트와 루코일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고, 유럽연합(EU)은 이번 주 로스네프트에 대한 전면 거래 금지 조치를 포함한 제19차 제재 패키지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그러나 실질적 타격 여부를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런던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마리아 샤기나 연구원은 "이번 조치는 서방 제재와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이미 취약해진 러시아에 추가 압박을 가한 것"이라며 "러시아는 올해 에너지 수입이 20% 감소했고, 정부는 세금으로 손실을 보전하려 한다"고 말했다. 반면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SWP)의 야니스 클루게 연구원은 "루블화는 거의 변동이 없고, 루코일과 로스네프트의 주가도 하락했지만 폭락하지 않았다"며 "이번 조치는 강력한 신호지만, 경제적 충격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이미 인도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독립적 원유 거래망을 구축해온 만큼, 수출 차질은 일시적일 것으로 본다. 새로운 우회 경로를 마련해 수출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에너지 애스펙츠의 리처드 브론즈 수석 애널리스트는 "결국 이번 제재의 지속적 효과는 미국이 이러한 우회 거래를 얼마나 철저히 단속할 의지가 있느냐에 달렸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푸틴으로부터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밀어붙일 결단이 있을지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제재 변수는 인도…"러시아 '압박'은 분명하지만 결과는 미지수"

제재 조치의 가장 큰 변수로 인도가 꼽힌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인도의 최대 정유사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는 미국의 압력에 따라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줄이거나 전면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인도는 하루 150만~200만 배럴의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며, 이는 러시아 전체 수출의 30~40%를 차지한다.

파르마르 국장은 "만약 인도가 수입을 줄이면 러시아의 주요 고객은 중국만 남게 되며, 중국은 인도가 줄인 물량을 대신 사들이기는 어렵고, 일부 원유는 시장에서 사라질 것"며 "이것이 현재 유가 상승의 주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제재로 유가가 급등할 경우, 러시아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조치를 단행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산 원유 가격이 1월 최고점 대비 약 25% 하락하는 등 유가가 안정된 덕분이다.

이에 대해 클루게 연구원은 "유가가 반등하면 러시아가 오히려 예상치 못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산유국 연합체인 OPEC+에 증산 압박을 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제재 발표 하루 뒤 "이번 조치는 러시아 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자존심 있는 나라는 압박에 굴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클루게 연구원은 "경제적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에 더 이상 유예를 주지 않겠다는 분명한 신호"라며 "그간 이어져온 기회의 반복, 즉 '경고 후 협상' 관행이 끝났음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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