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중계권 앞세워 유료 OTT와 정면승부
트래픽 모으고 광고·티켓·멤버십으로 수익 다각화
[서울=뉴시스]윤정민 기자 = 네이버가 굵직한 스포츠 중계권을 연달아 확보하며 쿠팡·티빙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주도해 온 모바일 스포츠 중계 콘텐츠 시장 구도에 적잖은 변화가 예고된다. 2000년대 초중반 '무료 중계'를 무기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던 네이버가 다시 한 번 시장에 파란을 불러 일으킬지 관심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지난달 28일부터 2025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경기를 국내 뉴미디어 독점 중계하고 있다.
독점 중계는 중앙그룹과의 계약으로 가능했다. 중앙그룹은 2026~2032년 열리는 동·하계 올림픽과 2025~2030년 FIFA 월드컵 방송 중계권 사업에 대한 국내 독점 권한을 갖고 있다. 네이버가 뉴미디어 중계권 부문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지난달 10일 중앙그룹과 본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네이버는 지난달 28일부터 칠레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을 네이버스포츠와 치지직을 통해 독점 송출하고 있다. 네이버에 따르면 같은 날 오전 5시에 열린 한국-우크라이나전(조별리그 1차전) 누적 시청자 수(네이버스포츠·치지직 통합)는 약 20만명에 달했다. 새벽 시간대 경기임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라는 평가다.
내년 월드컵 본선 역시 네이버는 치지직과 네이버스포츠에서 무료로 중계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네이버가 이 중계권을 타 OTT에 재판매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 경우 국내에서 경기 화면을 온라인에서 직접 송출할 수 있는 곳은 네이버 플랫폼뿐이다. 넷플릭스·티빙·쿠팡플레이 등에서는 시청할 수 없다. 경쟁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스트리머도 치지직이 아니면 ‘입중계’ 형태로만 방송할 수 있다.
◆천문학적 중계권료 감수, 그래도 얻을 게 더 많다는 네이버
방송업계에 따르면 중앙그룹이 이번 중계권을 확보하는 데 약 5억 달러(약 7000억원)를 지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네이버 역시 중앙그룹으로부터 중계권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IT업계에서는 네이버가 단기적으로는 중계권 지출에 따른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플랫폼 락인 효과를 노린 전략으로 분석한다. 네이버는 오픈톡·이슈톡을 장착한 '네이버 스포츠' 와 '치지직'을 통해 경기를 중계하면서 자유롭게 팬들이 실시간 소통하는 네이버식 경기 중계 서비스로 주목을 받고 있다. 쉽게 '너도나도 해설자' '다 함께 즐기는 방송 플랫폼'을 표방한다. 전문 해설자 혹은 스트리머의 일방적인 경기 중계를 전달받는 다른 미디어 채널들과는 확실한 차별점이다.
월드컵 무료 단독 중계를 통해 네이버 플랫폼을 주류 미디어 소비 트렌드로 굳히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광고·후원·티켓·굿즈 판매를 통한 직접 수익 외에도 네이버 스포츠와 치지직 등 영상 플랫폼 소비 확산을 통해 네이버 멤버십·스마트스토어·네이버페이 등 다른 네이버 생태계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네이버만의 강점은 무료 접근성"이라며 "다른 OTT처럼 유료 구독이나 별도 앱 설치가 필요 없기 때문에 스포츠 시청을 계기로 네트워크 효과를 키우고 치지직·네이버스포츠를 거쳐 결국 네이버 멤버십 등으로 연결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구 국대 중계 나선 네이버, 유료 회원 티켓 선판매로 충성 고객 공략
네이버의 전략은 최근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맺은 파트너십에서도 드러난다.
네이버는 KBO 프레젠팅 파트너 자격으로 다음 달 '2025 네이버 K-베이스볼 시리즈'라는 이름의 야구 국가대표 평가전을 연다. 내년 3월 예정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준비 차원으로 서울에서 체코와 두 경기, 일본 도쿄에서 일본과 두 경기가 진행된다.
네이버는 이들 경기 디지털 독점 중계권을 확보했다. 국민 누구나 네이버스포츠와 치지직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번 평가전 티켓은 네이버 단독으로 판매한다. 오는 30일부터 체코전 2경기 티켓을 판매하는데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이용자에게는 선예매 혜택을 제공한다.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에서는 국가대표 유니폼·모자·의류 등도 판매한다. 과거 무료 중계 시절 광고 수익에만 의존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치지직 크리에이터 후원 수수료·티켓 판매 수수료·멤버십 구독료 등 다양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
◆게임·스포츠 결합, 젊은 층 공략 시너지
네이버는 스포츠와 게임을 연계한 콘텐츠 기획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넥슨과 전략적 협업을 맺고 넥슨이 주관하는 게임 리그와 주요 이벤트를 치지직에서 중계하기로 했다.
네이버는 월드컵·올림픽 중계권을 확보한 만큼 인기 스포츠 게임 지식재산(IP)을 보유한 넥슨과의 다양한 마케팅이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발표 내용을 미뤄볼 때 양사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았지만 축구 게임 'FC' 시리즈를 소재로 한 e스포츠 대회가 치지직을 통해 진행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내년 6월에 열릴 월드컵을 연계해 'FC 온라인' 또는 'FC 모바일' 대회를 기획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단순 광고를 넘어 시청자가 곧바로 게임에 접속하거나 아이템을 구매하는 등 게임·커머스·멤버십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OTT가 장악해 온 국내 스포츠 중계 시장에서 네이버의 행보는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며 "초대형 대회를 무료로 중계하고 이를 네이버 생태계 전반으로 연결하는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낼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alpaca@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