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연구진, 척수손상 회복 방해하는 별세포 속 제동장치 찾았다

기사등록 2025/09/11 08:01:00 최종수정 2025/09/11 08:22:24

IBS, 반응성 별세포 속 가바(GABA)가 신경 회복 신호 차단 밝혀

마오비(MAOB) 억제제 'KDS2010'의 가바 생성 막는 효과도 확인

연세·서울대·한국과학기술연구원·뉴로바이오젠 공동연구

[대전=뉴시스] 기초과학연구원(IBS) 이창준 단장팀이 억제성 신경전달물질 '가바(GABA)'가 손상된 척수의 회복을 방해하는 핵심 원인임을 확인하고 마오비 억제제(KDS2010)의 회복 효과를 입증했다. 사진은 척수손상 동물모델에서 KDS2010의 치료 효과.(사진=I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전=뉴시스] 김양수 기자 = 손상된 척수의 회복이 어려운 이유가 한국 연구진에 의해 분자 수준에서 규명돼 새로운 치료제 개발에 속도가 붙게 됐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이창준 단장팀이 척수 내 별세포(astrocyte)가 마오비(MAOB) 효소를 통해 생성하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 '가바(GABA)'가 손상된 척수의 회복을 방해하는 핵심 원인임을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또 이를 기반으로 마오비 억제제의 회복 효과를 입증해 약물을 통한 척수손상 치료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동안 척수손상의 회복이 어려운 이유로 손상 부위에 형성되는 '교세포 장벽(glia barrier)'이 지목돼 왔다. 교세포 장벽은 손상 직후 별세포와 다른 교세포들이 급격히 증식해 상처를 두껍게 둘러싸는 조직으로 초기에는 손상 부위를 보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경이 다시 자라나는 길을 막는다.

그러나 회복을 가로막는 정확한 분자적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척수손상 치료제는 주로 염증을 억제하거나 증상을 완화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창준 단장팀은 앞선 연구에서 반응성 별세포(reactive astrocyte)가 마오비를 통해 가바를 비정상적으로 생성하고 이것이 알츠하이머 등 퇴행성 뇌신경질환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번에 연구진은 기존 연구를 기반으로 손상된 척수의 별세포를 분석, 가바가 신경세포 재생에 필요한 신경성장인자(BDNF)와 그 수용체(TrkB)의 발현을 억제한다는 것을 규명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발현억제에 따라 손상 후 회복에 필요한 신경 성장 신호가 차단되면서 신경섬유의 재생과 기능 회복이 중단된다.
 
이는 마오비에 의해 가바가 생성되는 경로가 척수손상의 회복 과정을 멈춰 세우는 제동장치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또 연구진은 척수의 별세포에서 마오비의 발현을 억제하거나 활성화한 실험동물 모델을 이용해 척수손상 후 회복 과정을 비교분석했다.

분석 결과, 마오비 발현을 억제한 쥐는 손상된 신경섬유가 다시 자라나고 뒷다리 운동 기능이 크게 회복됐다.

반면 마오비 발현이 증가한 쥐에서는 척수 단면적이 정상 대비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심각한 손상이 나타났으며 운동 기능도 거의 회복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마오비-가바 경로가 척수손상의 회복을 막는 직접적 원인임을 규명했다.

이어 연구진은 마오비 억제제 'KDS2010'을 척수손상 동물에 투여해 효과를 확인한 결과, 투여한 쥐는 사다리 걷기 시험에서 뒷다리 미끄러짐이 줄어드는 등 보행 능력이 크게 개선됐고 손상 부위에서 신경섬유가 새롭게 뻗어 나오는게 확인됐다.

또한 척수 단면 분석에서는 손상으로 생긴 빈 공간이 줄고 수초(myelin sheath·신경세포의 돌기인 축삭을 감싸는 절연막)화된 신경섬유가 증가했다. 영장류 모델에서도 손상 조직 손실이 현저히 줄고 신경이 보존되는 효과가 확인됐다.

특히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임상 1상 시험을 진행, KDS2010의 우수한 안정성과 내약성도 검증했다.

이창준 단장은 "이번 연구는 척수손상 후 신경재생을 직접 억제하는 분자적 경로를 규명하고 이를 제어하는 전략을 제시해 기존 치료제와는 차별화된 근본적 치료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설치류와 영장류에 이어 임상 1상까지 이어진 다층적 검증은 신약 후보물질이 실제 환자 치료로 이어질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뉴로바이오젠 등 다기관 협력을 통해 수행됐으며 연구 결과는 기초·응용 생명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신호 전달 및 표적 치료(Signal Transduction and Targeted Therapy)에 11일자로 게재됐다.

연구에 동참한 하윤 연세의대 교수는 "임상 1상에서 안정성이 확인된 KDS2010에 대해 임상 2상 시험을 실시, 실제 척수손상 환자에서 치료 효과를 검증할 계획이다"며 "마오비-가바 경로가 다른 신경질환에 관여하는지를 밝혀 적용 범위를 넓히고 더 정밀하고 복합적인 치료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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