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 상대방에 성희롱성 글 남긴 혐의
성폭력범죄처벌법상 '도달' 해석 쟁점
2심 무죄…"인식할 수 있는 상태 아냐"
대법 "제한 없이 접할 수 있으면 범죄"
[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계정을 차단해도 성희롱성 게시글을 제한없이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작성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지난달 14일 성폭력범죄처벌법상 통신매체이용음란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지난 2023년 5월 SNS 엑스(X·옛 트위터)에 접속해 20대 여성 B씨의 계정에 '멘션' 기능을 이용해 '이X의 자궁과 생리혈을 뜯어 먹자' '최대한 성희롱으로 타격을 줄 것이고, 법이 지키는 한 나는 너를 모독할 것임' '통구이로 먹어서 성고문 하자' 등의 글을 게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A씨와 논쟁을 하던 중 A씨의 계정을 차단했는데, 다른 계정으로 접속해 이 같은 내용의 글을 확인했다.
A씨 측은 재판에서 B씨가 계정을 차단했기 때문에 멘션 기능을 이용했어도 알림이 가지 않았고, 이에 글을 확인할 수 없어 성폭력범죄처벌법상 '도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성폭력범죄처벌법 13조는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전화·우편·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음향·글·그림·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정한다.
1심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으나, 2심은 A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스스로 피고인의 계정을 검색해 글을 일부러 찾는 별도의 행위를 하기 전에는 글을 확인해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며 "글이 피해자의 지배권 내에 들어가 객관적으로 피해자가 그 존재와 내용을 알 수 있는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성폭력범죄처벌법상 '도달'은 상대방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글을 직접 접하는 경우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글 등을 상대방에게 전송함으로써 상대방이 별다른 제한 없이 글을 바로 접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면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다는 구성요건을 충족한다고 봐야 한다"며 "상대방이 실제로 글을 인식 또는 확인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피고인의 트위터 계정을 차단해 게시글 관련 알림이 전달되지 않았으나 게시글은 피고인의 트위터 계정을 검색하면 별다른 제한 없이 손쉽게 볼 수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피해자가 무슨 이유에서든 피고인의 트위터 계정을 검색해 게시글을 보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은 범죄 성립 이후의 사정에 불과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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