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소설 '순수의 시대'로 여성 최초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디스 워튼의 초기 작품이다. '피난처'는 그동안 그의 대표작인 '순수의 시대', '이선 프롬', '환락의 집' 등에 가려졌다가 최근 학자와 평론가들 사이에서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워튼은 여러 작품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랑 없는 결혼이 야기하는 불행에 도덕적 딜레마를 녹여 풀어낸 바 있는데, '피난처'에 추후 그녀가 평생 화두로 삼은 문학적 테마가 담겼다.
'피난처'에는 대도시뿐 아니라 시골 지방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 힘겨운 연애와 실패한 결혼, 부모와 자식 간의 긴장 관계, 도덕적 딜레마에 뒤따르는 선택의 치명적 결과 등 이후 워튼이 펼쳐낼 그녀 문학의 씨앗 대부분이 고루 흩뿌려져 있다.
특히 이 소설은 '사랑과 불화하는 결혼'이라는 워튼 문학의 대주제를 포괄하는 동시에, 본성과 양육의 철학적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그 의미가 한층 더 깊다.
타고난 본성과 훈련을 동반한 양육 중 인간의 선택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무엇일까. 이 문제는 칸트와 루소, 로크를 비롯한 근대 철학자들 사이에서 논쟁되기 시작, 유전자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활발해진 오늘날까지도 입장이 첨예하게 갈려왔다. 현재는 격렬한 논쟁 끝에 이 둘이 상호 보완적이라는 일반론적 명제가 널리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이들 중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있다. 독자들은 각자 입장에 따라 작품이 던지는 질문에 나름의 방식으로 참여하게 된다.
'피난처'에는 본성과 양육 문제 말고도 여러 대립 구도가 더해져 독자의 흥미를 북돋는다.
어머니로서 아들 딕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케이트에게 최대 경쟁자는 미스 버니다. 버니는 '신식 여성'으로 케이트는 내내 그녀가 뿜는 기묘한 생기와 활력, 특유의 거만하면서도 솔직한 태도에 거부감을 갖는다. 두 사람은 각자 딕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끌기 위해 경쟁하는데, 워튼은 이 경쟁 구도에 전통적인 여성성(케이트)과 새롭게 등장한 여성성(버니) 사이의 갈등을 더해 긴장감을 높인다.
"아, 그 여자는 저와 성공을 같은 것으로 간주해요. 제가 반드시 성공할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101쪽)
"램프 불이 비치는 반경에 앉아 있는 동안 그녀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다만 일종의 확장된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3~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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