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말뚝들'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시랍회된 사람들 출몰…과잉된 치안 문제와 엮어
12.3 계엄 발발…"현실에 올라탈 수 밖에 없었다"
차기작도 메모에 근거…'미생물' 소재 단편 소설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모든 것을 기록해 둬요. 업노트(스마트폰 메모 애플리케이션)에 8820개 메모가 있어요. 꿈 같은 것도 적어두고, 아무 이유 없이 떠오르거나 지나가다 본 단어들이 자기들끼리 얽혀서 떠오르기도 해서 그런 순간들을 계속 메모해요."
'제3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김홍(39)의 집필의 원천은 이런 잡동사니 같은 '메모'다. 이런 메모가 빛을 발한게 바로 '말뚝들'로, 김홍은 이 작품으로 '제 3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김 작가는 19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말뚝들'도 2014년 9월에 메모 '거꾸로 박혀 있는 사람들의 말뚝'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이 메모를 가지고 습작을 하던 중, 소전문화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소설을 한편 마감해야 하는 상황이라 예전의 메모를 뒤척이다 '말뚝들'로 작업을 했다. 마침 한겨레문학상 공모가 있어 응모했고 수상까지 이어졌다.
소설 '말뚝들'은 억울하게, 서글프게, 쓸쓸하게 이름도 없이 죽었던 자들이 시랍화(屍蠟化) 돼 도심에 '말뚝들'로 출몰한다는 설정이다. 말뚝으로 새롭게 출현하는 존재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한다.
"바다에 말뚝으로 죽은 사람이 박혀있는 생각을 마음 속에 갖고 있었는데, 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장면을 생각하면 당연히 치안의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어 치안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써 나가는데 계엄이 와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종류의 과잉된 치안이 강제되는 상황, 이 현실을 올라타서 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에) 이상한 일이 계속 생기는 것이 신기하다"는 그는 "생각지 못한 일이 발생할 때 사건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일종의 부조리극처럼 연극 같다"고 말했다.
이런 작가의 인식은 책에 '몇년 전에도 전례없이 비상 계엄이 발동됐는데 해프닝처럼 세 시간 만에 국회가 해제시켜 버렸다'고 등장한다.
김 작가는 "(소설에는) 대통령 부부와 국방부 장관을 제외하고 계엄에 동조한 정치인은 큰 탈 없이 지나가는데, 이는 사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쓴 것"이라며 "이 예언은 틀려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작품에 언론사 이름, 실존 인물 같은 우리가 현실에서 쓰는 고유명사를 서슴지 않고 등장시킨다. 현실을 그대로 가져와 이를 뒤틀면 현실의 부조리는 더욱 선명하게 다가올 수 있어서다.
'말뚝들'에는 라디오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나온다. 김 작가는 "실제 라디오 듣는 것을 좋아하고, 오프닝 멘트와 시그널송을 맞추기 직접 성대모사 하면서 러닝타임을 맞춰봤다"고 집필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번 문학상 심사위원 8인(이기호·정지아·편혜영·강화길·박서련·심윤경·한창훈·서영인)은 최종 심사평에 "재미, 거침없는 문장, 계엄 사태를 놀라운 속도로 반영한 시의성, 설교 없는 서사"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 자신의 '메모'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날 아침 버스에서 뭉크 전시 광고를 보고 '이름 빼앗기'라고 메모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 가수든, 작가든 뭉크로 활동하면서 30년 이후 진짜 뭉크의 그림을 '내가 그린 것'이라며 작품을 빼앗는 상상을 했다"며 "사람의 기억은 흐려지고 가장 최신으로 기억되지 않나"고 했다.
현재 준비 중인 작품도 역시 메모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미생물에 관련된 단편소설을 집필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 회사를 그만두고 바이오 직업기술학교를 다녔는데, 등단도 잘 안되고 해서 여차하면 이쪽으로 취업을 해볼까 생각도 했어요. 그때 코로나 시기라 PCR 방법을 배우면서 유전자 조작을 배웠는데, 미원 같은 게 미생물의 부산물이란 것을 알게 됐고 더 많은 생산을 위해 유전자 조작을 했어요. 이제 하다 하다 인간이 미생물까지 착취하는구나 생각을 하고 소설로 써봐야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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