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5·18 책임 피하나…최웅 전 11공수여단장 사망

기사등록 2025/07/28 17:12:51 최종수정 2025/07/28 18:18:22

5·18 집단발포 책임 의혹에 조사위 등에 피고발

지휘관급 사망에 진상규명 또다시 물 건너가나

[서울=뉴시스] 박태홍 기자 = 공수부대 계엄군이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 시민군 진압 작전을 마치고 도청 앞에 집결하고 있다. 박태홍 뉴시스 편집위원이 1980년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재직 중 5·18 광주 참상을 취재하며 기록한 사진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해 최초로 공개한다.  (사진=한국일보 제공) 2020.05.17.  hipth@newsis.com
[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을 향한 집단발포 책임 의혹에 국가 조사기관으로부터 피고발된 최웅 전 11공수여단장이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최 전 여단장에게 적용됐던 집단살해 등 혐의에 대한 공소권이 사망과 함께 사라지면서 노환으로 숨져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내란수괴' 전두환과 같은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28일 5·18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최 전 여단장은 지난해 6월20일 90세 나이로 숨졌다.

최 전 여단장은 5·18 당시 11공수여단장으로 복무,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께 전남도청 앞에 배치된 자신 부대 소속 사병들이 시위대를 향해 집단 발포하게끔 지휘하고 사살하게 한 혐의(살인·살인방조·집단살해·내란목적살인 등)로 지난해 6월12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로부터 고발됐다.

또 휘하 62·63대대 소간부·사병 등 총 9명이 1980년 5월23일 광주~화순간 외곽 차단 작전 과정에서 마이크로버스를 향해 총을 쏘고 생존자들을 확인사살·임의처형한 사건, 다음날인 5월24일 광주 남구 송암동에서 양민학살을 주도한 사건에서 실탄을 나눠주며 살인 행위를 방조한 혐의도 받았다.

항쟁 마지막날인 5월27일 상무충정작전 과정에서는 작전을 모의하고 실행에 옮긴 책임자로서 내란목적살인 혐의를 받기도 했다.

최 전 11공수여단장은 1995년 최초 고발 당시 명단에 올랐으나 훗날 수사 선상에서 빠지면서 5·18 관련자로서의 처벌을 피한 바 있다.

 급기야 이번에는 조사위의 고발 8일 만에 숨지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사망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최 전 여단장의 사망 사례와 같이 지휘관급의 사망자가 다시 나올 경우 진상규명은 세월 속 미궁에 빠질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현재 5·18 유혈 진압의 책임이 가장 무거운 신군부 중요 인물 5인(전두환·노태우·이희성·황영시·정호용) 중 생존자는 현재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만 남았다.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노태우는 건강 악화를 이유로 생전엔 조사를 거부하다 2021년 한 달 간격으로 숨졌다. 2022년 들어서는 황영시 당시 육군참모차장이 숨졌고, 이희성 계엄사령관도 뒤를 따랐다.

지난해에는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가 정 전 사령관을 김문수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자의 자문 역할로 위촉했다가 논란이 되자 취소한 바 있다.

검찰은 고발 1년이 지나도록 고발인을 단 한차례도 소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진상규명 의지에 앞서 수사 의지부터 다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진상규명은 커녕 수사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40년도 넘은 사건에 대한 죄상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다보니 혐의를 가진 사람들이 자연사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대로 묻기에는 밝혀내야 할 의혹이 너무나도 많다. 하루빨리 밝혀내 법의 심판대에 세울 것들은 반드시 정의로 다스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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