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러 대통령 쫓아낸 시위 벌어졌던 장소
반 부패기관에 대한 검찰 수사에 격분
시위대들 "민주주의 공격당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에서 22일(현지시각) 밤 전쟁 발발 이래 처음으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난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시위는 집권 여당이 장악한 의회에서 부패를 조사해 기소하는 2개 기관의 독립성을 박탈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에 항의해 벌어졌다. 법안은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반부패 기관을 수사할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지난 21일 보안 당국이 젤렌스키 측 인사들을 조사하는 2개 기관을 급습했다. 이 기관들이 러시아 정보기관에 침투됐다는 것이 이유다.
수도 키이우의 대통령 집무실 앞 마이단 광장에서 벌어진 시위에 민간인과 군인들이 참여하면서 러시아에 맞서 단결해온 우크라이나 국민들 사이에 커다란 균열이 나타났다.
시위에 참가한 카테리나 아멜리나(31)는 “참호에 있는 내 남편은 이런 것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이번 일이 시민 사회가 10년 동안 쌓아 올린 것을 파괴할 수 있다”고 말했다.
22일 해가 지면서 키이우 중심가 마이단 광장에 모인 군중이 빠르게 늘었다. 마이단 광장은 10여 년 전 친 러시아 대통령이던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부패헤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던 곳이다. 마이단 광장의 시위로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직에서 쫓겨났다.
과거 시위에 참여했던 무스타파 나이옘 전 국회의원은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지금이 매우 슬프고 위험하다”고 말했다.
아멜리나는 남편이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에 화가나 전화를 했으며 다른 많은 군인들도 화가 나 있다고 전했다.
시민운동가들과 전문가들이 새 법안이 독립 언론과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공공 및 민간의 정부 감시 단체들을 탄압하려는 것으로 보면서 힘들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협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저명한 반부패 활동가로 젤렌스키 정부를 자주 비판해온 비탈리 사부닌이 지난주 군복무 회피와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유죄 판결이 나면 최대 10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의 옹호자들은 그에게 적용된 혐의가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갈수록 폐쇄적이 되면서 국민과 접점을 잃고 있다는 인식이 우크라이나에 널리 퍼져 있다.
독립연구단체 우크라이나 건강센터의 이리나 네미로비치(36)는 “최근 벌어진 일들을 참을 수 없다. 시민운동가들에 대한 공격, 반부패 기관에 대한 공격이 그렇다. 이미 봤던 일들”이라고 말했다.
영향력이 큰 참전용사로 시위를 촉구한 드미트로 코지아틴스키는 소셜미디어에 “시간이 없다. 오늘밤 거리로 나가 젤렌스키가 야누코비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오늘 저녁에 보자!”라고 썼다.
시위는 평화롭게 진행됐고 경찰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 집무실 밖 바리케이드에는 소수의 경비 인력만 있었다.
서부 르이우 등 여러 도시에서도 시위가 벌어졌고 시위 소식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키이우 시위에 참여한 사쉬코 아담류크(25)는 우크라이나가 단순히 땅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면서 “우리 민주주의가 공격받고 있다”고 말했다.
전투에서 두 다리를 잃은 참전용사 올렉산드르 테렌(29)은 정부의 조치가 전쟁에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투명한 정부를 위해 싸우고 있다. 이번 결정은 유럽의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우는 군인들의 사기를 꺾는 일”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