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돈 꿀꺽' 먹잇감 된 지자체 투자보조금…"심사 강화해야"

기사등록 2025/07/21 15:52:04 최종수정 2025/07/21 17:50:23

허상 뿐인 사업계획서로 지자체 보조금 절반 가로채

비용 부풀리고 완공 날조, 보조금 매입부지 재매각도

혈세 낭비, 투자 기회 날리며 보조금 사업 취지 무색

"일벌백계 필요…보조금 사업 감사·심사 독립성 확보"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투자 유치·지역 고용 창출 목적으로 각 지자체가 지급하는 보조금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 지역 소멸 위기 극복의 마중물이 될 소중한 혈세지만 보조금을 '임자 없는 돈'이라 여기며 먹잇감 삼는 조직적인 사기 행각이 잇따르고 있다.

보조금 사업자의 도덕적 해이가 큰 문제지만, 지자체의 허술한 보조금 지출 심사와 부실 관리·감독도 도마에 올랐다.

광주지법 제12형사부는 최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지방재정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식품제조유통업체 대표 A(64)씨에 대해 징역 8년을 선고했다.

A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A사가 전남 한 지자체에 '투자금 490억대 냉동식품 제조·유통 공장을 신축하려 한다'며 사업 계획을 거짓 제안, 투자 보조금 45억원만 가로챈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A씨는 "다른 지자체와 투자 협의를 진행했고, 국내 대기업과 제휴도 맺었다. 수출 제의도 받아 조율 중이다"라로 거짓말하며 '자본금 8억원, 외부 유치 42억원, 금융차입 443억원' 등을 골자로 하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결국 지자체는 나씨가 내세운 '장밋빛 청사진'만 믿고 보조금 60억원을 지급키로 했다. 이 중 45억원은 실제 집행했다.
      
그러나 결국 A씨가 가짜 투자 계획을 내세워 지자체 보조금만 빼돌린 행각이 들통 났고, 해당 지자체는 한 해 투자유치 재원의 절반 가량을 환수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공장 시설비를 부풀려 억대 보조금을 가로챈 혐의(지방재정법 위반 등)로 기소된 농산물 유통법인 대표 B(58)씨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B씨는 형식상 설립한 '유령 법인'을 통해 시설 설비 납품 단가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전남 모 지자체의 투자 유치 시설보조금 3억370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B씨는 효소공장을 지으면서 해당 지자체가 산단 내 시설 투자액의 20%까지 지원하는 보조금을 부정 수령한 것으로 조사됐다. 유령 법인과의 가짜 납품 계약으로 납품단가를 실제 5억6400만원보다 3억3000만원 더 부풀려 차액 만큼을 빼돌려 쓴 것으로 드러났다.

지자체와 약정한 제조 시설 투자를 마치지 않고도 짜고 친 거래 내역을 증빙해 보조금을 타낸 사례도 있었다.

건강보조기기 제조기업 대표 C(52)씨는 사기·지방재정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았다.

C씨는 2018년 12월 전남 지자체에 투자 약정한 제조시설 투자를 마친 것처럼 꾸며 시설공사 보조금 1억7450만원을 부당하게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C씨는 수익성이 불명확한 사업으로도 투자유치 보조금을 타냈고 자금난에 시설 공사를 마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 보조금 지급 요건을 충족하고자 건설업자까지 동원해 거래 내역을 꾸며냈다.

최근 경찰도 전남 도내에서 지자체로부터 공장 신축용 입지 보증금을 지원받고 땅을 재매각하는 등 수법으로 업체 30곳이 보조금 130억원을 타낸 정황을 포착, 수사하고 있다.

이처럼 투자 유치·진흥 보조금을 가로채는 위법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경기 침체와 지역 소멸 위기 속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비수도권 지자체가 표적이 되고 있다.

실제 다른 지자체와 투자 협의 상황을 실제보다 과장해 회유하는 등 지자체 간 치열한 투자 유치 경쟁을 악용한 범행도 있었다. 지리적 거리나 입지 여건 상, 기업을 유치하기 힘든 비수도권 지자체로서는 당장의 투자 제안에 솔깃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보조금 편취로 인해 지자체가 치러야 할 대가는 크다. 혈세는 혈세대로 낭비하고, 진짜 투자할 기업은 보조금 지원 기회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발길을 돌리며 보조금 사업 취지 자체가 무색케 된다.

결국 지자체 역시 투자하려는 기업의 실체·자산 가치, 실제 투자 의지와 수익성이 있는지 등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규모 투자 유치의 경우, 광역지자체까지 나서 사업 검토·투자 심사 등을 하는데도 이른바 '보조금 사냥꾼'을 걸러내지 못했다. 투자 유치 약속만 철썩 같이 믿고, 면밀히 살펴야 할 보조금 지급 심사와 사후 점검은 소홀한 셈이다.

투자 유치 성과가 선출직 단체장의 치적이자 성적표로 여겨지는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다.

투자 양해각서 체결만 해도 홍보에만 열 올리는 지자체가 정작 사업 관리·감독은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투자 협의 단계부터 기업의 건전성·수익성을 두루 살피는 엄격한 보조금 심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오주섭 광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21일 "투자가 실제 고용 창출과 경기 활성화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 기간이 걸린다"며 "실제 사업이 단계 별로 잘 진행되는지 꾸준히 사후 관리·감시·감독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에는 투자 유치용 국고 보조금을 나눠 먹으려는 업체와 브로커, 대행사까지 짬짜미로 얽힌 조직적 범행도 적지 않다.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극인 만큼 일벌백계해야 한다"며 엄벌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자체는 인구 위기 극복이 시급하고, 치적이 필요한 단체장의 정치적 이해까지 맞물려 보조금 지급 심사가 엄격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보조금 사업에 대한 감사 기능의 독립이 보장돼야 하고, 보조금 심사 역시 단체장 입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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