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로한 부모님 업고 피신" 광주 하신마을 침수 긴박했던 순간

기사등록 2025/07/20 17:12:54
[광주=뉴시스] 이현행 기자 = 지난 17일 물에 잠긴 광주 북구 용강동 하신마을. (사진 = 김선상씨 제공) 2025.07.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이현행 기자 =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이 집에 계시는 걸요."

20일 오후 광주 북구 용강동 하신마을에서 만난 김선상(59)씨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지난 17일을 '지옥'이라는 표현으로 회고했다.

지난 17일 20가구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인 이곳에는 426.4㎜의 이례적인 호우가 덮쳤다. 주변은 물바다가 됐고 점차 차오르던 비는 논과 밭을 집어삼킨 뒤 주택까지 삼키려 들었다.

김씨는 쏟아지는 거센 비에 하던 일도 멈추고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비는 이미 허벅지까지 차올랐고 거센 물살 때문에 앞으로 나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김씨는 멈출 수 없었다. 집에는 97세와 89세의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가 집에 왔을 땐 이미 마을 주민 대다수가 대피소로 대피한 상태였다.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은 대피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고, 비가 멈추길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하늘도 무심하게 비는 끊임없이 내렸다. 비는 단 몇 시간 만에 대문의 절반 높이를 넘어섰고 집 구들장까지 차올랐다. 김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부모님을 마을에서 가장 높은 마을회관으로 옮길 생각을 했다.

집과 마을회관의 거리는 약 50m. 김씨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순서대로 등에 업고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길을 뚫고 전진했다. 수많은 쓰레기와 나뭇가지, 돌 등이 발과 몸에 부딪혔지만 개의치 않았다.

김선상씨는 "영화에서 나올 법한 상황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부모님을 모신 뒤 물은 집안까지 들이닥쳤고 가구를 포함한 모든 것들을 집어삼켰다. 마을회관도 지대가 높았지만 문턱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정말 무서웠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눈 뜨고 당하는 것보단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날(18일) 새벽 1시가 되니 물이 빠지기 시작했고 아침에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모님이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다. 집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가장 가슴 아픈 건 수십 년 동안 간직해온 가족사진이 모두 흙탕물에 젖어 볼 수 없게 됐다. 추억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데 속상하다"고 이야기했다.
[광주=뉴시스] 이현행 기자 = 20일 오후 광주 북구 용강동 하신마을에서 침수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쓰레기를 한 곳에 모으고 있다. 2025.07.20. lhh@newsis.com



◎공감언론 뉴시스 lhh@newsis.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