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해안 요충지 '서천읍성' 사적 된다

기사등록 2025/07/17 09:57:13

조선 초기 연해읍성 축성기법 변천 과정 반영된 역사적·학술적 가치 인정

[서울=뉴시스] 서천읍성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5.07.1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국가유산청이 '서천읍성(舒川邑城)'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17일 밝혔다.

'서천읍성'은 조선 초기 세종 연간(1438년~1450년 경) 금강 하구를 통해 충청 내륙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으려고 돌로 쌓은 성이다. 

조선 초기  주로 세종 연간에 왜구 침입 방어와 지방행정 안정 도모를 국가 주도로 해안 요충지에 연해읍성(沿海邑城)이 세워졌다.     .

이 성벽은 1645m 규모의 연해읍성(沿海邑城)으로는 드물게 자연 지세를 활용해 산지(山地)에 축성됐다.

일제강점기 1910년 '조선읍성 훼철령'으로 전국 읍성이 철거되는 수난 속에 성 내부 공해시설(公廨施設, 행정·군사 등 공무수행에 필요한 시설)은 훼손됐다.

남문지 주변 등 일부를 제외한 성벽은 대부분이 잘 남아있다. 성벽 1645m 중 1535.5m(약 93.3%)가 남아있는 상태다. 
[서울=뉴시스] 서천읍성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5.07.1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천읍성'은 1438년(세종 20년)에 반포된 '축성신도(築城新圖)'에 따른 계단식 내벽과, 1443년(세종25년) 이보흠(李甫欽)이 건의한 한양도성의 수직 내벽 축조기법이 동시에 확인된다.

'충청도읍지' 등 문헌에 따르면 이 읍성에는 치성(雉城)이 17개소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까지 조사결과 16개소가 대체로 90m 간격을 두고 설치된 것이 확인됐다.

이는 1433년(세종 15년) 150보 간격(주척환산 155m)으로 설치하도록 한 기준보다 촘촘하게 배치된 형태다.

국가유산청은 조선 초기 축성정책 변천과정을 이해할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고 다른 읍성에서는 찾기 어려운 독특한 양식을 가지고 있는 등 학술적인 가치 또한 크다고 평가했다.
[서울=뉴시스] 서천읍성 수혈유구 해자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5.07.1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 밖에도, 1451년(문종 1년) '문종실록'에 성터가 높고 험해 해자를 파기 어렵다는 기록이 있어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자를 비롯해 방어용으로 추정되는 1.5~2m 간격의 수혈유구가 확인됐다.

조선 초기 연해읍성 축성 구조와 변화 과정 등을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서울=뉴시스] 서천읍성 사적 지정 구역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5.07.1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국가유산청은 30일간 예고 기간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서천읍성'의 사적 지정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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