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해피엔딩'으로 토니 어워즈 6관광 쾌거
"뉴욕 리딩 공연 제안에 '그럴 필요 없다' 하기도"
다양한 이력 "어릴 때 방황, 공연 만드는 데 도움"
10월 국내서 공연 "우리 정서와 감수성 지킬 것"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처음에는 작품이 성공하지 못할 이유에 대한 말이 더 많았어요. 유명한 원작이 없고, (주연인) 대런 크리스가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가 아니고, 한국을 배경으로 한 로봇 이야기라는 거죠. 개막 전에는 '그런 걸 누가 봐' 했는데, 공연이 잘 된 상태서 생각해 보면 되레 그걸 참신하게 봐주신 것 같아요."
미국 토니 어워즈 수상으로 한국 뮤지컬에 새 역사를 선사한 박천휴 작가가 24일 서울 중구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성공 비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박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가 함께 쓴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6년 서울 대학로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지난해 11월에는 브로드웨이에 진출, 관객과 평단을 모두 사로잡으면서 지난 9일(한국시간) 열린 토니상에서 작품상·극본상·음악상 등 6관왕을 차지했다.
한국에서 먼저 제작돼 선보인 작품이 토니상을 받은 건 '어쩌면 해피엔딩'이 최초다. 박 작가는 한국 국적으로는 처음으로 토니상 수상자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한국 공연계에 새로운 페이지를 열어젖힌 '어쩌면 해피엔딩'의 출발은 2013년이다.
'윌휴 콤비'로 유명한 박 작가와 애런슨 작곡가가 처음으로 작업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를 본 우란문화재단 관계자가 이들의 새로운 작업을 궁금해했다. 이때 보낸 구성안이 '어쩌면 해피엔딩'이었다.
당시 우란문화재단은 뉴욕에서도 활동하는 박 작가와 애런슨 작곡가를 고려해 뉴욕 리딩 공연도 제안했다.
이에 오히려 '윌휴 콤비'가 손을 내저었다. 박 작가는 "그때만 해도 윌과 나는 '뉴욕 실정을 너무 모르셔서 원대한 꿈을 꾸시는 것 같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씀드렸다"며 웃었다.
하지만 재단 측에서는 "결과와 상관 없이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윌휴 콤비'도 "어차피 우리는 영어와 한국어 버전을 모두 쓰니까, 해보겠다"고 응했다.
그리고 2016년 10월 뉴욕에서 열린 영어 버전 낭독 공연을 본 유명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드가 손을 내밀면서 브로드웨이 공연도 성사됐다.
작품은 미래의 서울에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서로 사랑을 느끼며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현지화하며 몇 가지 연출을 손보기는 했지만, 작품의 메시지나 감성은 유지했다.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도 배경은 서울이고, 주인공이 키우는 화분의 이름도 '화분'을 밀고 나간 이유다.
박 작가는 "자신감 넘치는 그런 경력 있는 작가는 아니다. 한국에서 관객들이 충분히 공감해 주지 않았다면, 연출이나 제작자가 '이 대사 바꾸는 거 어때, 설정을 바꾸는 게 어때' 했을 때 매번 바꿨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큰 공감을 받은 경험이 쌓여 있어서 '바꾸기 싫다'고 고집을 지킬 수 있었다. 그 원동력이 한국 관객들이었다"고 고마워했다.
작품은 할리우드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에게도 극찬을 받았다. 박 작가는 "'공연을 봤는데 너무 좋았다, 너희 공연이 잘 돼 좋다'는 응원 메시지를 받았다"며 수줍게 웃었다.
박 작가는 디자이너, 가요 작사가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한때 이 부분이 고민이었다는 그는 "어렸을 때는 사실 방황한다고 생각했다. '하나만 잘하기도 힘든데 뭘 이것저것 하려고 할까, 이러다가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 굉장히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런 고민은 '어쩌면 해피엔딩' 첫 연습 때 모두 사라졌다고도 했다.
박 작가는 "'나는 이 일을 하려고 지금까지 이렇게 여러 가지를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예술이라는 건 총체적인 예술이지 않나. 나의 다양한 방황의 경험이 공연을 만드는 능력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날 자리에는 NHN링크 공연 제작 이사인 한경숙 프로듀서도 참석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초연과 재연을 맡았던 대명문화공장 콘텐츠사업파트 파트장을 지냈던 한 프로듀서는 지난해 작품의 브로드웨이 공연 투자에 이어 오는 10월 개막하는 10주년 기념 공연을 함께한다.
한 프로듀서는 "박 작가님과 저의 인연은 하늘에서 계획한 것 같다"고 웃었다.
10주년 기념 공연에 대해서는 "한국 공연은 브로드웨이 공연의 지침서라고 생각한다"며 "한국 공연은 최대한 감성을 유지하고 새로운 공연장에 맞춰 보완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봐주신 관객에게는 익숙하면서도 반갑고, 이번 기회로 '어쩌면 해피엔딩을' 알게 된 분들께는 신선한 감성을 드릴 것"이라고 소개했다.
박 작가 역시 이번 한국 공연에 대해 "대본과 음악이 바뀌는 건 없다"며 "10년째 하고 있는 공연을 브로드웨이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해서 굳이 바꾸고 싶지 않다. 우리의 정서와 감수성을 지키면서 다시 한국 관객을 만나게 돼 설렌다"고 기대했다.
대신 '브로드웨이 버전'의 '어쩌면 해피엔딩'은 2028년 국내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토니상 수상이라는 쾌거는 박 작가에게 큰 영광이자 또 다른 숙제로 남게 됐다. 박 작가는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그것에 눌리면 자엽스럽제 않은 작품을 쓰게 될 것 같다. 애런슨이라는 훌륭한 파트너와 하던대로 서로 잘 보완해가면서 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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