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남주현 기자 =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1.5%에서 금융위기 수준인 0.8%로 크게 내려잡고 0%대 저성장을 공식화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파격적인 관세 정책에 우리 성장 동력인 수출 타격이 우려되는 데다 민간소비와 건설경기 침체에 따른 내수 균열 가능성까지 더해지면서다.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코로나19 때나 볼 수 있었던 0%대 성장률에 직면하면서 한은은 기준금리를 낮춰 경기 부양에 나섰다. 이에 더해 이창용 한은 총재는 향후 기준금리 인하 폭이 커질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추가 금리 인하를 시사했다.
한은은 29일 올해 경제성장률을 종전(1.5%)의 절반 수준인 0.8%로 제시하고 기준금리를 2.75%에서 2.50%로 낮췄다. 한은은 지난해 2월(2.3%)부터 5월(2.1%), 11월(1.9%), 올해 2월(1.5%)까지 전망치를 낮춰왔지만 0%대 성장률 제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저성장을 의미하는 0%대 성장률은 1980년 오일쇼크(-1.5%)나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 금융에 따른 외환위기(-4.9%), 2009년 금융위기(+0.8%), 코로나19 후폭풍이 컸던 2020년(-0.7%)에 불과할 정도로 드물다. 그만큼 우리 경제를 어둡게 보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한은은 미국과 중국의 통상 악화가 심화되는 최악의 경우 올해 성장률이 0.7%까지 떨어질 것으로 봤다. 관세 유예기간 동안 모든 국가와 무역협상이 원만히 진행돼 관세율이 상당폭 인하될 경우에도 올해 성장률은 0.9%로 1%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금통위 통화정책방향문에는 "내수 부진이 점차 완화되겠지만 그 속도는 더딜 것으로 보이며, 수출은 미국 관세부과 영향 등으로 둔화폭이 확대될 것"이라며 "올해 중 성장률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며 향후 성장경로의 불확실성도 높은 상황"이라고 언급됐다.
이 총재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관세정책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수출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또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과도하게 투자하고, 지금은 PF(프로젝트 파이낸스) 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건설 투자가 나빠졌다"고도 언급했다.
올해 우리 성장이 0%대로 꺾일 것으로 보면서 추가 완화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해야하는 한은의 부담도 늘었다. 이 총재는 "성장률 전망이 크게 하향 조정된 만큼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성장 확률이 금융위기 당시에는 5%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14%에 이른다"로 우려하며 "예상보다 성장세가 크게 약화된 만큼 향후 금리 인하 폭이 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금통위원들 역시 추가 금리 인하 의사를 내비쳤다. 3개월 후 금리 수준 전망을 의미하는 포워드가이던스를 통해 금통위원 6명 중 무려 4명이 인하 가능성을 열어놨다. 이 총재는 "2월 전망 때 위원들이 생각했던 금리 경로에 비해서 더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집값과 가계부채 증가 등 불안 요소는 경계 요소다. 이 총재는 0%대 전망에도 빅컷에 나서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지금 처럼 불확실성이 클 경우에는 유동성 공급이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며 코로나 때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기준금리가 내년 1% 대로 내려갈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봤다. 그는 "내년 성장률이 1.6%로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지금으로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면서 "중장기적으로 1%가 쭉 유지되는 그런 때까지 우리나라 경제가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금통위원들은 부동산 가격과 특히 서울 지역 부동산 가격과 가계 부채에 미치는 영향 등을 한 번 더 보면서 (금리를 )결정할 것"이라면서 "새 정부도 가계부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금리 정책의 특정 부동산 자극 문제에 대해 공감을 나누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금통위를 소화하며 시장의 추가 금리 인하 기대는 높아졌다. 이날 오전장에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0.8bp 떨어진 2.306%기록해 3일 연속 3일 연속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그동안의 금리 인하 효과와 가계부채 추이, 새정부 재정 확장 등을 확인 후 8월 재차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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