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연기금 등의 대체투자 운용 및 관리실태 감사
공제회 투자 과정서 기초자료 검토 누락, 사익추구 등 적발
대학 동창의 소개로 외국 전기차 관련 펀드에 연기금 수백억원을 투자하거나, 해외 부동산 투자 과정에서 지속적인 임대료 수익 창출이 가능한지 사전에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투자금 전액 손실이 발생한 사례도 있었다.
감사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주요 연기금 등의 대체투자 운용 및 관리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대체투자'란 전통적 투자자산인 주식과 채권을 제외한 부동산 등 다양한 유형의 자산에 투자해 위험을 분산하고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방식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채권보다 수익률이 높고 주식보다 변동성이 낮은 것이 특징이다.
이번 감사에서는 공적 자금을 운용하는 공제회의 투자 총괄 담당자 등이 자신과의 이해관계를 감추고, 공제회의 투자를 검토·추진하면서 사익을 추구하는 행태가 여러 건 적발됐다.
건설근로자공제회의 모 본부장은 2016∼2024년 팀장 등으로 재직 시절 공제회 투자 등을 총괄하면서 2019년 4월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지인으로부터 스페인 소재 물류 자산에 대한 투자건을 소개받고, 같은 해 9월 공제회가 관련 펀드에 실제 300억원을 투자하도록 했다.
이 본부장은 자신이 차명으로 설립한 회사를 통해 2020년 5월 현지 브로커로부터 컨설팅 수수료 명목으로 20만유로(당시 환율 기준 약 2억6500만원)을 받았다.
이후 본부장은 자신의 차명회사가 미술품 구매 명목으로 2020년 12월 2억5000만원을 처남에게 이체하도록 지시한 뒤 배우자 명의의 계좌를 거쳐 본인 계좌로 2억5000만원을 건네받았다. 그러나 실제 미술품 거래는 없었다고 감사원은 전했다.
뿐만 아니라 본부장이 공제회 자금으로 조성된 펀드를 직접 운용할 수 있도록 자신의 차명회사를 금감원에 GP(펀드 업무집행사원)로 등록하는 과정에서 GP 등록에 필요한 공제회 이사장 명의로 허위 내용을 기재한 출자확인서를 발급하고 공제회 법인 인감을 부정 사용한 사실도 적발됐다.
이밖에 본부장의 모친, 배우자, 아들·딸 명의의 계좌를 통해 공제회가 투자한 상장·비상장 회사 2곳의 주식을 차명으로 매수했고, 자산운용 담당 임직원의 주식 매수는 금지된 사실을 알면서도 본인 명의로 7억4500만여원의 주식을 매수한 사실이 확인됐다.
건설근로자공제회의 전직 과장은 외국 전기차 회사 관련 펀드의 투자 검토를 담당하면서, 해당 전기차 회사 관련 펀드운용사 직원인 대학 동창으로부터 투자설명서를 전달받은 당일 투자예정금액을 200∼300억원으로 책정, 실제로 공제회가 200억원을 투자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두 사람은 영국 디지털 자산 거래소에 2억원을 투자하는 등 동업 관계인 사실이 감사로 밝혀졌다.
감사원은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에게 공제회의 투자와 관련해 사익을 추구한 본부장에 대해 파면 징계처분하고, 앞으로 공제회의 투자 담당 직원과 펀드의 핵심운용인력 등 직무관련자가 사적 이해관계 등이 있는데도 투자 담당 직원을 해당 직무에서 배제하지 않고 투자를 검토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주의요구했다. 별도로 감사원은 검찰에 본부장에 대한 수사요청을 하는 한편, 감사가 시작되자 퇴사한 전직 과장에 대해선 감사 지적사항 외에 추가로 범죄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사항을 수사참고자료로 검찰에 송부했다.
부동산 투자 과정에서 기초 자료 검토조차 부실하게 해 투자금 전액 손실 등의 우려가 있는 공제회도 있었다.
한국교직원공제회는 2018년 8월 미국내 타 지역에 비해 공실률이 높은 시카고 소재 오피스 관련 후순위 채권 매입을 위해 조성된 펀드에 3500만달러를 투자했지만, 투자 기간 중 주요 임차인의 계약 종료 등으로 2020년부터 오피스 임대율은 86.5%에서 71.4%로 크게 하락했고, 오피스 매각절차가 진행됨에 따라 투자금 전액 손실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감사원은 판단했다.
건설근로자공제회는 2020년 8월 수원산단 내 물류센터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조성된 펀드에 205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으나, 공실이 지속됨에 따라 배당금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대한소방공제회는 충남 당진시 석문국가산업단지 내 주거지구에 임대 목적 상업용 빌딩 건축 과정에서 저조한 분양률 등으로 인한 착공 연기 끝에 사업을 재추진했지만 임대율은 10.6%에 불과한 실정이고, 2023년 기준 연간 임대료도 당초 예측했던 임대료의 5.9%에 불과하다고 감사원은 설명했다.
감사원은 한국교직원공제회, 건설근로자공제회, 대한소방공제회 이사장에게 앞으로 부동산 투자 시 주요 임차인의 임대차 조건 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투자 심의과정에서 관련 리스크와 이에 대한 대응방안 등을 논의하지 않고 투자를 결정하거나, 착공 시점의 임대수요를 반영하지 않고 사업 타당성 분석을 하는 등의 일이 없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주의요구했다.
공제회의 신용 등을 바탕으로 보증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한 자회사의 투자 손실이 공제회의 부담으로 귀결된 경우도 있었다.
공제회 자회사 공우이엔씨는 2019년 11월부터 생활형숙박시설 사업(총사업비 719억원)에 전기공사 담당 시공사(공사비 96억원)로 참여했지만, 분양률 저조 등으로 숙박사업은 무산됐고 자회사의 경영난으로 인해 공제회가 기존 사업 대출금 전액(367억원)을 대위변제하는 등 손실을 떠안았다.
감사원은 군인공제회 이사장에게 앞으로 자회사가 수익 대비 과도한 보증의무 등을 부담하면서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데도 이를 방관·은폐하거나 관리를 소홀히 해 손실을 키우는 일이 없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주의요구했다.
공제회가 수조원 이상의 자금을 운용하면서도 임직원의 금융투자상품 거래시 내부정보 이용 등을 방지하기 위한 통제제도를 마련하지 않거나 허술하게 둔 사실도 감사로 확인됐다.
감사결과, 경찰공제회 등 3개 기관은 주식 등 금융투자상품 거래제한 규정이 없었고, 행정공제회 등 4개 기관은 거래제한 규정은 있으나 규정 준수 여부를 주기적으로 점검하지 않고 있었다.
감사원은 경찰공제회 등 7개 공제회 이사장에게 자산운용 관련 임직원에 대한 금융투자상품 매입 등 제한 방안을 마련하고, 규정 준수 여부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등 기관별 행동강령에 따라 징계 등의 조치를 하도록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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