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30주년 기념 릴레이 인터뷰 ②]
회기동 단편선·단편선과 선원들 거친 싱어송라이터 단편선
초창기 인디 음악부터 들어온 '인디신의 아이'
천용성·선과영 음반 제작한 오소리웍스 대표
음악 창작자 겸 음악 애호가인 '프로슈머' 전형
단편선(박종윤)(레이블 오소리웍스 대표)은 올해 30주년을 맞은 '인디 신(scene)의 아이들' 중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대 솔로 프로젝트인 회기동 단편선,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을 통해 그로테스크한 사회적 서사를 지닌 음악으로 주목 받았고, 2020년대엔 천용성, 전유동, 후하, 보일, 소음발광, 선과영 등 개성적 언술이 분명한 뮤지션들의 음반을 함께 한 제작자로서 조명됐다.
작년 밴드 '단편선 순간들'(피아니스트 이보람·베이시스트 송현우·드러머 박재준·기타리스트 박장미)로 8년 만에 새 앨범 '음악만세'를 발매하며 개인 음악작업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늘보다 더 기쁜 날은 남은 생에 많지 않을 것이다' '불' '음악만세' 등 트리플 타이틀곡과 김해원이 피처링한 '아내' 등 총 열 개 트랙이 실렸다. 무엇보다 재즈, 민속음악, 아트록, 현대음악 등 장르를 넘나드는 혼종 실험이 담겼다.
"음악가이기 이전에 음악애호가였고, 그동안 들어온 다양한 음악들을 괴물처럼 흡수했다"(김학선 대중음악 평론가)라는 평을 받는 단편선이야말로 창작자 겸 음악 애호가인 '프로슈머(producer+consumer)'의 전형이다.
'한국의 그래미'로 통하는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선정위원장 김광현·한대음)(27일 오후 8시 프리즘과 한대음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에서 '음악만세'로 올해의 노래, 올해의 음반,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록 노래, 최우수 모던록 노래, 최우수 모던록 음반 등 6개 부문 후보로 지목되며 완성도를 인정 받았다.
음악의 쓸모가 의심 당하고 음악의 힘이 점점 부정당하는 시대에 음악 생산자이자 음악 마니아가 외치는 '음악만세'는 개인과 사회의 팽팽한 평행적인 관계를 만들어내면서, 아이러니가 가득한 순간들을 선사한다.
음악에 대해 만세라고 외칠 수 있는 이유는 사실 세상이 아닌 나 자신을 알게 만들어서다. 그건 '오늘보다 더 기쁜 날은 남은 생에 많지 않을 것이다'라는 걸 깨닫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다음은 최근 홍대 앞에서 만난 단편선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인디 30주년을 기념해 올해 내내 진행할 인터뷰들 중 두 번째이기도 하다.
-'한대음' 6개 부문이나 노미네이트됐습니다. 이 시상식 다섯 개 부문 후보에 오른 에스파랑 나란히 거명되면서 단편선 순간들이 K팝 팬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 음반은 타이밍 좋게 '음악 쓸모'에 대해 환기시켜주기도 했습니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일부를 차용한 '랜드 오브 호프 앤드 글로리(앤드 더 싱스)(Land of Hope and Glory(and The Things))'를 비롯해 광장에 어울리는 '음악 만세' 기치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근데 탄핵 정국이 아니었더라도 이번 음반은 사회적으로 맞물렸을 거라고 추정해요. 좋은 음악은 어느 맥락과도 어울리잖아요. 이번 음반의 발화점은 무엇이었나요?
"앨범 구상 처음엔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외롭다'는 건 굉장히 보편적인 감정인데, 전 그런 생각을 많이 안 하고 살았던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생계를 위해 투잡, 스리잡을 하고 회사 직원들의 월급을 책임져야 하고, 개인적으로는 사기를 당한 부분도 있어서 물리적·심적으로 힘든 상태가 되니까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23년 초였어요. 그 때 다이애나 로스, 스미스를 들으면서 적었던 글귀 같은데, '음악 만세'라는 메모를 남겨놓았더라고요. 전 음악 창작자이기도 하지만 사실 애호가의 입장에서 이제 음악이 아주 오랜 친구같이 느껴진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어떤 음악들과 그리고 친구들이나 동료들 덕택에 포기하지 않고, 완전하게 낙담하지 않고, 계속 조금씩 해나갈 수 있는 것들이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아마 그런 표현을 썼던 것 같습니다."
-'랜드 오브 호프 앤드 글로리(앤드 더 싱스)'가 1번 트랙으로 들어가는 건 필연적이었나요?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이거든요. 음악들이 갖고 있는 권위라는 게 있잖아요. 클래식이란 건 아카데미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요. 그러니까 어떤 학제적인 걸 통해서 움직이는데 전 그게 싫었어요. 그러니까 권위에 대한 존중이고 나발이고 이런 것들 없이 그냥 그 선율에 대한 기호들을 가지고 한번 연주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연주를 해봤죠. 앨범 전체 의미에서 보자면 '저희 아무렇게나 할 거예요'라고 선언을 하고 시작한다는 느낌도 있고요. 이 음악의 뒤쪽은 얼터너티브 록처럼 연주가 된단 말이죠. '학생들이 처음 악기를 잡아보고 연주하는 스타일로 유치하게 연주를 끝내버리자' 생각도 했어요. 연주하는 동료들 입장에서는 엄청 애먹었을 거예요. 왜냐면, 평소엔 굉장히 프로페셔널로 연주를 많이 하러 다니는 친구들인데 일부러 유치하게 연주해달라고 요구를 하니, 오히려 그렇게 못하더라고요."
-말 나온 김에 멤버분들과 함께 하시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음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다음에 작업 과정을 길게 잡아보고 싶었었어요. 음악 외 다른 작업이 많으니까 '1년 정도는 프리프로덕션이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구축을 해보자'고 생각했죠. 또 이번엔 제가 총괄 감독 역할을 하기보다 연주자들하고 만나면서 생기는 생각하지 못했던 시너지, 효과들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2023년 초부터 피아노 치는 이보람 선생하고 둘이서 조그마한 피아노 연습실을 빌려서 편곡을 시작했어요. 그 다음에 베이스 치는 송현우 선생님 모시고 와서 셋이서 해보고, 그 다음에 기타 박장미 선생님 모시고 와서 넷이서 해봤죠. 그 다음 드러머 박재준 선생님이 오시고요. 3개월에 1명씩 추가를 시키는 방식으로 했어요. 서로 익어야 되고, 서로 존중감이 생기면서 뭔가를 쌓아나가는 시간들을 계속 가져가고 싶었거든요. 원래는 단편선 솔로 앨범을 만든다고 생각을 하면서 시작을 했는데, 만들다 보니까 이거는 '내가 솔로라고 할 수는 없겠네. 멤버들하고 같이 만드는 거지'가 됐고 더 작업하기 편하게 됐죠."
-그러면 이 음반을 만드시고는 외롭지는 않으셨나요?
-앨범과 동명의 곡인 '음악만세'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연설문이 삽입됐어요.
"앨범 수록곡 중 가장 마지막에 썼던 곡인데요. '음악만세'라는 제목의 앨범이기 때문에 '음악만세'라는 제목의 곡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여러 가지를 시도를 했어요. 이를테면, 굉장히 현대음악적인 걸 해보기도 하고 국악 리듬까지 해보기도 하는데 이성적으로 되게 잘 만들어진 송(song)을 만든다는 것이 '음악만세' 곡에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다 버렸어요. 이후 마지막으로 음반 점검할 겸 기타를 들고 휴가를 갔다 관점에 따라 반복적이고 심플한 곡이 만들어졌어요. 나중엔 확장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중간에 특이한 걸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희빈의 '사약을 받아라' 같은 1950~60년대 저작권 풀린 영화들의 대사들을 갖고 넣기도 했는데 어느 날 제가 좋아한 송경동 시인님의 연설이 떠올랐고, '음악만세'라는 곡에서 '음악에 대한 얘기를 전혀 안 하는 게 더 좋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송 시인님 연설을 찾아보다가 김진숙 선생님 연설도 듣게 됐는데 갑자기 너무 와 닿는 거예요. 노동운동의 세월은 내가 가지고 갈 테니 '다 미래로 가셔라'라는 말 자체가 보편적 사랑처럼 다가오더라고요."
-'오늘보다 더 기쁜 날은 남은 생에 많지 않을 것이다'는 대중적이라는 평도 받았습니다.
"트와이스 노래 같이 만들고 싶었어요. 미국에서 치어리딩 같은 거 할 때 쓸 것 같은 음악 느낌이 있잖아요.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리듬들이 아이돌 팝하고 별 차이가 없거든요. 그런 리듬들의 속성들을 가져와 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 다음에 공간감을 어떻게 만들 건가에 대한 고민을 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챔버팝의 분위기를 만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했어요."
-음악적 아이디어를 정말 많이 갖고 계십니다.
"제가 대단히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기보다는 음악을 좋아하는 애호가의 입장에서 여러 음악을 잘 알고 있는 편이고, 그중에서 엄청 매력을 느끼는 부분을 잘 섞는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이를 테면 수민&슬롬의 '미니시리즈 투(Miniseries 2)'를 들으면 '너무 잘 만들었다' 감탄하거든요. 저는 음악을 잘하는 편이 아니에요. 기능적인 것도 잘 못하고요. 애호가 입장에서 듣고 싶어하는 조합이나 보고 싶어하는 그림을 계속 만들어보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거죠. 프로슈머라고 할 수 있죠."
-대표님이 보시기에 인디 30주년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세요.
-그럼 인디 신의 키드로서 대표님이 보실 때 그간 인디 신에서 가장 바뀐 지점은 무엇인가요?
"2010년대에는 주로 창작자로 활동하는 게 많았고 2020년대에는 주로 제작자로 활동한 게 많았죠. 그렇게 합치면 한 15년 남짓 정도 활동한 것 같아요. 그간 기술과 산업 자체가 완전하게 바뀌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2010년대만 해도 레이블들 힘이 셌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레이블에 안 들어가고도 자기 혼자 활동을 잘 하더라고요. 인디 신 지원 문제는 복잡한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물론 인디 지원이 많으면 신인들이 좀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겠죠. 그것과 별개로 거시적인 차원에선 음악이라는 매체가 갖고 있는 힘이 많이 떨어졌다는 생각을 해요. 음악이 나빠서, 음악이 뭘 잘못해서라기보다는 경쟁해야 할 것이 많아진 거죠. 음악은 시간을 들여서 듣는 거잖아요. 그런데 음악보다 더 직관적으로 사람을 사로잡을 만한 게 너무 많아졌어요. 넷플릭스도 있고, 유튜브도 있죠. 이로 인해 음악 파워가 많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힘듦 같은 게 있죠. 다만 이런 상황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은 안 해요. 흐름이 계속 왔다 갔다 하겠죠. 특히 요즘은 촉각적인 경험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러니까 코로나19가 지나면서 축제 쪽은 더 잘 되는 게 예죠. 개인적으로 가장 혼란스러운 상황은 공공성의 영역이에요. 전 이 부분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항상 하는 사람인데 최근 10년, 15년 사이에 한국의 공공성 가치 체계가 무너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술이라는 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누리는 '정신적 풍요'라는 관점에서 '다원적 가치'를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인데 그 어떤 기준들이 한국 사회에서 계속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한국 사회가 거의 최고로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같이 느껴질 때가 너무 많아요."
-그럼에도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계속 좋은 뮤지션들을 제작하시잖아요.
"이유는 아주 간단해요.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Low Risk, Low Return)' 구조이기 때문이에요. 제작비를 같이 만들거나, 조그마한 지원을 따오거나 같은 계획을 같이 세우죠. 결국 지속 가능성을 만드는 건 생계가 유지 되거나 적당한 수익이 나오는 것이거든요. 제 주위에 저하고 비슷한 처지이거나, 후발주자로 나온 레이블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수익을 내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들 투잡을 하기도 하고 다른 수입을 만들려고 일을 하죠. 그 가운데 중요한 건 레이블이랑 계속 카탈로그를 쌓는 거거든요. 어떤 좋은 계기가 생겨서 이 곡들 중 한 두 곡 정도가 히트를 할 수 있게 되면 우리도 조금은 더 성장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거죠. 사람이 살면서 해나가는 일이란 게 있잖아요. 돈이 되든 안 되든 간에 계속 해나가는 게 있는 건데… 언제나 부자가 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지만 부자가 되기 전까지 부자가 안 돼도 좋다는 심정으로 계속 가보자 생각을 합니다."
-단편선적 사고 같은 느낌이네요. 올해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우선 개인적으로는 밴드를 함께하는 멤버들과 계획이 있어요. 앨범을 발매했으니, 싱글을 빨리 발매해야 한다는 강박은 갖지는 않으려고 하고요. 대신 좋은 쇼를 보여줄 수 있는 레퍼토리를 정비하고 쇼적인 부분을 강화하는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왜냐면 음반이 2024년에 나왔으면 이거 가지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1년 반 2년은 먹고 살아보려고 노력이란 걸 해야 되거든요. 오소리웍스로서는 천용성의 신보를 올해 반드시 낸다가 계획입니다. 대구에 있는 밴드 중 '신도시'가 있는데, 항상 로컬 밴드와 뭔가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엄청 있어요. 아울러 부산 기반의 밴드인 소음발광도 신보 하나를 계획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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