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장애인 시설 접근권 미비→'정부 책임' 인정…복지부 "판결 존중"(종합)

기사등록 2024/12/19 19:47:20 최종수정 2024/12/19 23:28:24

300㎡ 이상 소매점에만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법원 "입법 장기 미실현…부작위는 위법해"

50㎡로 기준 강화했지만 여전히 한계점 논란

"1층이 있는 삶 보장하도록 법 개정 힘 써야"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지난 10월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장애인 접근권 국가배상 사건 관련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장애인들이 참여한 모습.  2024.10.23. yes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구무서 기자 = 대법원에서 장애인 접근성 미비에 대한 국가 보상 책임을 인정하면서 관련 제도의 개선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장애인들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장애인 접근성 보장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장애인 당사자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 구제 소송에서 원고에게 1인당 10만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장애인 접근성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한 최초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번 판결의 쟁점 법률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 등 편의법)'이었다.

이 법 시행령에는 장애인 등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편의시설 설치 기준이 규정돼있다.

그런데 이 시행령은 수퍼마켓 등 소매점, 일반음식점, 휴게음식점, 제과점 등에 대해 바닥 면적 합계가 300㎡를 넘는 소규모 소매점에만 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부여됐다. 편의점의 경우 이 기준에 해당하는 점포 수가 3%, 서울에서는 1.4%에 불과해 유명무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 제도는 1998년부터 2022년까지 이어졌고 2022년에야 300㎡에서 50㎡로 기준이 강화됐다.

대법은 24년 넘게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은 국가의 행정입법 부작위가 위법하고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봤다.

그간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09년 유엔장애인권협약 발효, 202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권고,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등 제도를 개선할 계기가 있었지만 결국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대법은 "피고(국가)는 24년이 넘도록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행정입법의무를 불이행한 부작위로 인해 장애인 등 편의증진법과 장애인 차별 금지법의 입법 취지와 내용이 장기간 실현되지 못했다"며 "불이행의 정도가 매우 커 법률이 보장하고자 한 지체장애인의 접근권이 유명무실해졌으므로, 피고의 부작위는 위법하다"고 했다.

2022년 편의시설 설치 의무 기준이 강화됐지만 여전히 제도 한계는 있다. 개정된 기준은 신축 건물에만 적용되고 기존 건물에는 의무 적용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여부를 매년 조사하고 있는데, 지난 4월 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현황 조사에 따르면 편의시설 설치율은 89.2%였다. 법에 따라 설치를 하게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10곳 중 1곳은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법적 기준에 맞는 적정 설치율은 79.2%로 더 내려간다.

[세종=뉴시스] 국내 첫 장애인 편의점 'CU제주혼디누림터점'. (사진=한국장애인개발원 제공) 2024.08.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보건복지부 용역으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수행한 '소득활동 및 사회참여 보장을 위한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확대 방안' 연구에 따르면 향후 10년 간 접근로, 화장실 등 장애인 편의시설을 전체적으로 도입할 경우 편익이 3조8222억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반면 설치 등을 위한 비용은 709억8000만원으로, 이 비용을 제외하면 3조7512억원의 순비용 편익이 발생한다.

이번 소송을 이끌어왔던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대법 판결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환영 의사를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는 "장애를 가진 사람도 사회의 한 일원으로 인정 받은 순간"이라며 "이 선고를 앞세워 국가를 상대로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소송 대리인인 한상원 공익법단체 두루 변호사는 "국가가 위법한 제도적 차별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엄중한 심판을 내린 것"이라며 "1층이 있는 삶을 보장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향후 정부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입법취지와 목적을 살려 그동안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받지 못한 장애인과 가족의 기본권이 지켜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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