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의 저주' 인텔 겔싱어 사임…삼성전자는?

기사등록 2024/12/03 10:56:12

파운드리 비전 내세우며 부활 꿈꿨지만 실적에 발목

매년 수조원 투입되는 '장치 산업' 파운드리의 숙명

삼성도 투자 늘고 적자 누적…리더십 교체, 반전 모색

[서울=뉴시스]페트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가 2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맥에너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IFS(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다이렉트 커넥트' 행사에서 첨단 공정으로 제작된 웨이퍼 소개하고 있다. 인텔은 2021년 4년 내 5개 공정을 개발하겠다는 '5N4Y' 계획이 순조롭다고 밝혔다. (사진=인텔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인준 기자 = 인텔의 패트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부진의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했다.

인텔은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실현을 위한 반도체 제조 경쟁력 강화 정책의 최대 수혜자로 여겨졌으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투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적자 위기가 불거졌다. 10년 이상 장기 계획에 따라 수 조원 넘게 꾸준히 투자해야 하는 대규모 장치 산업인 파운드리 사업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3일 인텔은 보도자료를 내고 겔싱어 CEO가 지난 1일(현지 시각) 사임했다고 밝혔다.

그가 지난 2021년 2월 취임한 지 3년여만이다. 인텔은 그의 사임을 '은퇴'로 표현했지만, 일부 외신에서는 이사회와 갈등을 빚다가 해임과 은퇴 중 선택을 강요받았다고 전했다.

인텔 이사회는 "제조 경쟁력을 회복하고 세계적 수준의 파운드리가 되기 위한 역량을 구축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며 "회사는 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후임은 임시로 데이비드 진스너 최고재무책임자(CFO)와 미셸 존스턴 홀트하우스 클라이언트컴퓨팅그룹(CCG) 사장이 맡았다.

◆겔싱어, 왕국 재건 적임자에서 몰락해
겔싱어는 취임 당시 '반도체 제국' 인텔을 재건할 적임자로 기대를 모았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인 1979년 10월에 인텔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이후 40년 동안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종사했고, 그중 인텔에서만 30년 넘게 일한 베테랑이다. 특히 인텔이 최전성기를 구가한 이른바 '486 컴퓨터'라고 불리는 반도체 프로세서의 설계를 지휘했다. 이를 공로로 40대 초반의 나이에 2001년 인텔의 최고기술자(CTO)를 맡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한 순간에 경쟁 구도에서 밀려 회사를 떠나게 됐다.

그가 떠난 사이 인텔은 이후 부임한 CEO들의 잇따른 실책으로 암흑기를 보냈다. 겔싱어의 귀환은 인텔이 구가하던 '반도체 왕국'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의 취임 일성도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데 방점이 찍혔다. 하지만 겔싱어의 야심은 불과 3년여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겔싱어 취임 이후 인텔은 역대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파운드리 사업을 통해 인텔 부활을 꿈꿨지만, 세계 1위인 TSMC의 벽이 워낙 높았다.

이런 가운데 막대한 투자 비용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인텔은 지난 3분기에만 166억달러(23조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겔싱어 CEO 취임 후 인텔 주가는 70% 하락했다. 주력 사업인 CPU(중앙처리장치) 역시 결함 문제가 불거지고, 엔비디아 등 경쟁 기업이 치고 나간 AI 산업에서 기회를 잡지 못해 선두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뉴시스]미국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인텔 본사. (사진=인텔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파운드리 산업의 높은 장벽…삼성도 남일 아냐
인텔 몰락 배경에는 여러 원인이 지목되지만, 그중 하나는 파운드리 사업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점이 거론된다.

파운드리 사업은 공장 건설과 첨단 공정개발을 위해 매년 수 조원 투자가 수반된다는 특성이 있다.

사실상 후발주자로서는 불리한 위치다. 특히 오랜 기간 쌓아온 고객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평가다. 인텔 파운드리는 미국을 반도체 제조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미국 정부의 야심찬 계획의 '간판'으로 여겨졌지만, 빅테크(기술 대기업)들에 제조 경쟁력을 의심받고 있다.

인텔 파운드리 수장도 최근 3년간 여러 차례 교체되고, 회사의 잦은 구조조정으로 조직도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도 들린다.

파운드리 업계 2위 자리를 노리던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에서 위기를 맞은 가운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 향배에도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는 인텔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사업부를 지난 2017년 출범하고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했지만, 여전히 시장 점유율은 10%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에 400억달러(55조원)를 들여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수 천억원에 달하는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되고 있지만 파운드리 사업 실적은 최근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로선 TSMC의 독주 체제가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전자 역시 리더십 교체로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에서 실적이 부진한 파운드리사업부에 이례적으로 두 명의 사장을 배치했다. 반도체 업계 최전선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며 '영업통'이란 평가를 받는 한진만 신임 사장에게 파운드리사업부장을 맡기고, 반도체 공정개발 및 제조 전문가로 꼽히는 남석우 사장을 파운드리사업부 CTO(최고기술책임자)에 임명하는 초강수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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