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문제 해결 위한 OCI와의 통합 불발
'키맨' 신동국 회장, 형제→모녀로 마음바꿔
올해 초부터 8월까지 직원 280여명 퇴사해
[서울=뉴시스]황재희 기자 = 한미약품그룹 오너가(家) 경영권 분쟁이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직원들은 이탈·분열됐고, 주주들 역시 기약없는 싸움에 불만이 커지면서 기업 이미지마저 휘청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그룹 모녀와 형제가 경영권을 두고 1년 가까이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한미, OCI그룹 통합 무산부터 ‘키맨’ 신동국 회장의 변심까지
한미 오너가 분쟁은 창업자 고(故) 임성기 회장이 지난 2020년 별세하고, 상속세 문제가 발생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법정 상속비율에 따라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가 된 임 회장의 아내인 송영숙 회장은 54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초 글로벌 소재·에너지 전문기업 OCI그룹과 통합을 위한 절차를 추진했다.
송 회장과 딸인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이 이를 주도했고,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은 각사 현물출자와 신주발행 취득 등을 통해 그룹 간 통합에 나섰다. 계약에 따라 OCI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구주 및 현물출자 18.6%, 신주발행 8.4%)를 취득하고,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는 OCI홀딩스 지분 10.4%를 취득하는 방식이다.
그러자 임 회장의 장남과 차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와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사장이 반발하고 나섰다. 양 그룹이 통합하는 소식을 전혀 알지 못했으며, 통합 방식에 동의하지 못한다며 결국 법원에 이를 반대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형제가 낸 한미사이언스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으나, 이 과정에서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의 '캐스팅보트'를 쥔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형제 편에 섰다. 회사의 지배구조 및 경영권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거래를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신 회장은 한미사이언스 지분 12.15%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다.
신 회장을 등에 업은 형제는 지난 3월 열린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 표대결에서 승리하면서 형제가 제시한 '이사 5명 선임 주주제안'이 가결됐고, 결국 OCI와의 통합은 무산됐다.
이후 형제가 한미사이언스 이사진 진입 후 처음 열린 이사회에서 차남인 임종훈 사장이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 송영숙 회장과 공동 대표이사 체제를 확정시키며, 갈등이 일단락되는 듯 했다. 가족 간 화합을 토대로 새로운 한미를 경영키로 한 것이다.
그러나 한달 여만에 송 회장이 공동대표에서 물러나면서 불화설이 재점화됐고, 장남인 임종윤 이사가 한미약품 대표 자리에 오르려던 시도가 무산되기도 했다.
이후 키맨이었던 신 회장이 이번에는 형제측이 아닌 모녀측과 손을 잡으면서 새로운 싸움이 시작됐다. 신 회장은 형제가 추구했던 해외펀드 지분 매각설 반대, 형제의 상속세 해결 방안 부재 등에 따라 다시 모녀와 손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모녀 손을 잡은 신 회장은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의 지분 일부를 사들이면서 상속세 문제 해결에도 나섰다.
모녀와 신 회장(이하 3자 연합)은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총 소집을 통해 이사회 구성원을 12명으로 확대(현재 10명)하고, 신규 이사 3인을 선임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3자 연합은 이를 통해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 계약을 통해 48.19%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으나, 이사회 구성에서 형제 측에 4대 5로 밀리면서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사이언스 정관을 변경해 이사회 구성을 확대해야 한다.
또 현재 한미약품그룹 핵심 사업회사인 한미약품은 한미사이언스와 독립 경영을 선언하고, 전문경영인인 박재현 대표이사 중심의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북경한미약품과 한미정밀화학, 온라인팜, 제이브이엠, 한미사이언스 헬스케어 사업 부문 등 한미약품을 제외한 주요 계열사 대표는 한미약품의 독립경영을 비판하고 있다.
◆R&D 명가 한미그룹, 직원 다수 이탈…오랜 기간 투자했던 소액주주 ‘답답’
이 같은 분열에 직원들 다수가 회사를 이탈하고 있다.
한미사이언스 지분 6.04%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공단 자료에 따르면, 한미약품·한미사이언스 직원 280여명이 올 초부터 지난 8월까지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약품 직원 34명은 오너가 분쟁이 시작된 1월에 퇴사했으며, 이어 7개월 간 212명이 추가로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사이언스 직원도 같은 기간 69명 퇴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소액주주 역시 상황이 해결되지 않자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분쟁이 계속되면서 한미사이언스 시가총액 및 주가가 계속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사이언스 한 주주는 “오래전부터 한미의 철학과 R&D 잠재력 등을 믿고 투자해온 사람으로서 회의감을 느낀다”며 “진흙탕 싸움이 하루 빨리 끝나 회사 경영이 안정화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한미사이언스 소액주주연대 최근 3자연합을 공개 지지한다고 선언문을 발표했으나, 의견이 제대로 취합되지 않았다며 하루 만에 이를 철회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주가는 한 때 27%까지 하락하며 주주들의 속을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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