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사형' 反간첩법 대상, 日·서방국 이어 한국인까지

기사등록 2024/10/30 17:20:20 최종수정 2024/10/30 21:38:16

지난해 반간첩법 개정 이후 간첩 행위 개념 확대

2014년 법 제정 이래 일본인 최소 17명 적용

[베이징=AP/뉴시스] 지난해 반간첩법 개정으로 법이 강화된 가운데 지난해 한국 교민이 처음 간첩 혐의로 체포돼 구속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사진은 2022년 10월1일 중국 명예 경호원이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3주년 기념 국기 게양식에서 오성홍기를 펼치는 모습. 2024.10.30
[베이징=뉴시스]박정규 특파원 = 중국 기업에서 근무하던 한국인이 반(反)간첩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간 일본과 서방국가 등을 위주로 이뤄져온 중국 당국의 수사가 한국인에게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지난해 한층 강화된 반간첩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이 같은 우려는 예고돼왔다.

반간첩법은 간첩 조직과 그 대리인이 국가기관이나 기밀 부처, 주요 정보 기반 시설 등에 대해 벌인 사이버 공격 등을 간첩으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이다.

그동안 국가안보 강화 기조를 이어온 중국은 법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반간첩법 개정안을 지난해 7월부터 시행했다.

2014년 이후 9년 만에 대폭 개정된 법안은 내용을 종전 5장 40조항에서 6장 71조항으로 늘렸다. 또 간첩 행위에 대한 정의를 확대한 것이 핵심이다.

더욱이 '국가 안보' 등 핵심 개념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아 중국 당국이 자의적으로 법을 집행할 여지가 커졌다는 우려가 크다.

개정안에는 기밀 정보 및 국가 안보와 이익에 관한 문건·데이터 등에 대한 정탐·취득·매수·불법 제공을 간첩 행위에 추가했으며 국가기관·기밀 관련 부처·핵심 정보 기반시설 등에 대한 촬영, 사이버 공격, 간첩조직 및 그 대리인에게 협력하는 행위 등도 간첩 행위에 추가했다.

간첩조직 등이 중국의 국민·조직 또는 기타 조건을 활용해 시행하는 제3국을 겨냥한 간첩 활동이 중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경우에도 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간첩 행위를 했지만 간첩죄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에도 행정구류 등의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에 대해서는 출국을 명할 수 있으며 출국하지 않을 경우 추방도 가능하다. 추방 명령을 받게 되면 10년 내 입국금지도 적용될 수 있다.

외국인 여행자의 경우 군사지역이나 방산업체 등의 사진 촬영을 주의해야 하며 국가안보 및 이익과 관련된 자료는 공개된 내용이라 해도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저장하면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형법상 간첩죄가 적용되면 경미한 경우 징역 3∼10년을 선고하지만 사안이 엄중하면 무기징역이나 사형도 가능한 것으로 돼있다.

이 같은 반간첩법으로 처벌된 사례는 그동안 일본인들이 가장 많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014년 중국에서 반간첩법이 시행된 이래 최소 17명의 일본인이 현지에서 구속됐다. 이 가운데 11명은 형기가 만료된 후 석방되거나 형기 도중 석방돼 일본으로 송환됐다. 나머지 6명 중 1명은 복역 도중 병으로 사망했다.

[캔버라=AP/뉴시스] 중국에서 간첩 혐의로 구금됐다가 3년여 만에 석방된 중국계 호주 언론인 청레이가 지난 6월17일 호주를 방문한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의 기자회견장인 캔버라 국회의사당에 나타난 모습. 2024.10.30
재판은 모두 비공개로 이뤄졌으며 이들이 어떤 경위로 구속되고 어떤 행위가 문제됐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사례로는 제약회사 아스텔라스의 직원인 50대 일본인 남성이 지난해 3월 베이징에서 간첩 혐의 등으로 구속된 뒤 올해 8월 중순 당국에 기소된 일이 있다. 구체적인 기소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에는 기시다 후미오 당시 일본 총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할 때 직접 조기 석방을 촉구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현재 아스텔라스 직원을 포함해 기소된 2명, 복역 중인 3명 등 일본인 5명이 중국에서 구속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에는 중국에서 40년 이상 일해온 영국인 기업가 이언 스톤스가 해외에 불법으로 정보를 팔아넘긴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베이징의 한 교도소에 수감 중이라는 보도가 외신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호주의 경우 언론인이 간첩 혐의로 구금됐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호주 국적의 언론인 청레이는 2020년 외국 기관과 접촉해 업무상 취득한 국가 기밀을 넘긴 간첩 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3년간 구금됐다. 그는 지난해 2년 11개월 형을 선고받고 이미 형기를 넘겨 석방됐다.

또 중국계 호주 작가인 양헝쥔은 2019년 간첩 혐의로 체포된 뒤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다만 2년 집행유예로 이 기간 별다른 사유가 없으면 무기징역으로 감형받게 된다. 중국 정부 기관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양헝쥔은 2000년 호주로 건너가 시민권을 취득했으며 소셜미디어(SNS)와 블로그 등을 통해 중국 공산당 체제를 비판하고 민주주의 개혁을 주장했다.

이처럼 주로 일본과 서방국가 등에 집중돼온 반간첩법 적용 사례가 현재 구속 상태인 50대 한국 교민 A씨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국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닌 상황이 됐다.

외교 당국에 따르면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에 거주하던 50대 한국인 A씨는 지난해 12월 허페이시 국가안전국 소속 수사관들에 의해 체포돼 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다가 지난 5월께 구속됐다.

A씨가 체포됐을 당시 제시된 문건에는 중국 반도체 업체의 기밀을 한국으로 유출했다는 이유로 반간첩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다는 내용이 담겼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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