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주요 산 21곳 중 절정 3곳뿐
4일에야 설악산 첫 단풍…점점 늦춰져
전문가 "늦더위가 원인…일회성 현상 아냐"
[서울=뉴시스] 오정우 기자, 안윤서 인턴기자 = 가을을 맞아 지난 20일 서울 관악산에 단풍 구경을 나섰던 안모(52)씨. 하지만 기대만큼 즐기진 못했다. 예년이었으면 울긋불긋 피어올랐을 단풍이 올해는 눈에 잘 띄지 않아서다.
안씨는 "가을이 오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제는 봄·가을이 없어지고 바로 여름 되고 겨울 되겠다 싶어 걱정이 될 정도"라고 말했다.
최근 관악산을 찾은 신모(54)씨도 11월이 성큼 다가왔음에도 단풍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신씨는 "이번 여름이 너무 더워서인지 단풍이 늦는 것 같다"며 "이젠 단풍을 보려면 11월에 등산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가을의 시작 10월이 저물어가는데도 단풍 구경에 나섰다가 헛걸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절기상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10월23일)'도 지났으나, 여전히 평년보다 기온이 높게 나타나 단풍을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을에도 고온 현상이 지속되면서 올해 단풍은 예년보다 늦게 물들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색과 화려함이 덜하고 흐릿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각 단풍' 탓에 나들이객의 아쉬움이 커지고 있다.
30일 기상청에 따르면 전국 주요 유명산 21곳 가운데 단풍이 절정을 보이는 건 설악산, 오대산, 덕유산 뿐이다. 심지어 전북에 있는 내장산에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올해 첫 단풍은 평년보다 늦게 나타났다.
기상청은 설악산에 첫 단풍이 든 지난 4일 보도자료를 통해 "올해 단풍 시작은 지난해보다 4일, 평년보다 6일 늦은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구체적으로 평년(1991~2020년) 기준 주요 산에서 단풍이 처음으로 드는 시기는 ▲설악산(9월28일) ▲오대산(10월1일) ▲치악산(10월7일) 등이다. 이와 달리 올해엔 각각 이번달 4일, 8일, 11일에야 첫 단풍을 볼 수 있었다.
단풍 관측 시기가 늦어지는 원인으로는 가을까지 기승을 부리는 늦더위가 꼽힌다.
통상 단풍은 일 최저 기온이 5도 이하로 내려가기 시작할 무렵 물들기 시작한다. 다만 내륙을 중심으로 오전 기온이 10도 내외로 유지되고 있어 단풍이 들기 어려운 셈이다.
이에 산림청은 지난달 23일 "올해 6~8월의 평균기온이 지난 10년(2009~2023년) 평균 대비 약 1.3도 상승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향후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학과 교수는 "한창 폭염이 심했던 2018년 이래 가을까지 늦더위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며 "단풍을 관측하기 힘든 현상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갑자기 추워지면 단풍이 다 들지도 못한 채로 떨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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