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여름이 유난히 길게 이어졌다. 그런 탓에 나뭇잎이 늦게서야 가을 색을 입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겨울은 왜 이리 서둘러 오는 것인지. 홍엽(紅葉)은 미처 만산(滿山)하지 못한 채 이른 북풍에 하나둘 지고 있다.
하지만,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만추'(晩秋)엔 이 또한 '매력'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시인 겸 문학 평론가 레미 드 구르몽(1858~1915)이 시 '낙엽'에서 '시몬'에게 "좋으냐?"고 물었던, 길에 쌓인 낙엽을 밟을 때마다 들리는 '바스락' 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낙엽 위 걸음마다 신발을 넘어 느껴지는 감촉, 그리고 낙엽 하나하나가 마치 올 한 해 내가 보낸 시간의 편린(片鱗)인 것과 같은 착각까지 다 그렇다.
그런 곳을 찾고 싶은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한국관광공사가 '11월에 가볼 만한 5곳'을 꼽았다. 바로 ‘낙엽 밟으며 걷는 길’들이다.
[서울=뉴시스]김정환 관광전문 기자 = 왕숙천으로 유유히 흘러 들어가는 봉선사천을 따라가다 보면, 경기 포천시 소흘읍 '국립 수목원'이 나온다. 동쪽엔 운악산, 서쪽엔 용암산을 두고, 그사이에 자리한다.
수목원은 면적만 약 102㏊(약 30만8550평)다. 하루에 모두 둘러보기 어려울 만큼 넓다.
숲에 스며든 가을을 보기 위해 나섰다면, 수목원 남쪽이 제격이다. 수목원교를 지나면 덱 구간이 나온다. 길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남쪽으로 접어든다.
처음 나오는 산책로는 '숲 생태 관찰로'다. 천연림에 460m 길이의 덱을 조성했다. 걷기만 해도 가을 품에 폭 안긴 듯한 기분이 절로 든다.
관찰로를 빠져나오면 길은 어느덧 '육림호'로 이어진다. 청명한 바람을 느끼면서 호수와 숲이 어우러진 산책로를 걸을 수 있다.
한참 걷고도 왠지 아쉽다면 통나무 카페에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야외 테라스에서 호수 풍광을 감상하며, 음료를 마셔 보자.
카페를 나와 약간 경사진 길을 따라 10여 분을 걸으면, '전나무 숲길'에 도착한다. 국내 '3대 전나무 숲길' 중 한 곳이다.
이 길은 일제 강점기인 1923~1927년 강원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에서 종자를 가져와 심으면서 시작했다. '피톤치드'가 듬뿍 나오므로 잠시 걷기만 해도 건강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삼림욕'을 체험할 수 있다.
방문객이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전나무 숲길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오다 보면 만나게 되는 '휴게 광장'이다. 키 큰 아름드리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운다. 왜 나무가 '아낌없이 주는 존재'인지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곳이다.
수목원 북쪽 '난대 온실' '열대 온실 '산림 박물관' '전문 전시원' '이야기가 있는 전시원' 등에도 가을 숲을 감상하기에 좋은 장소가 많다.
이 중 전문 전시원에는 자연 학습에 좋은 '라일락원' '양치 식물원' '희귀 특산 식물 보존원' 등이 있다. 평소 관심을 둔 식물이 있다면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
이야기가 있는 전시원은 '식물 진화 속을 걷는 정원' '손으로 보는 식물원' '키 작은 나무 언덕' '소리 정원' 등 이름만 들어도 호기심이 생기는 곳으로 이뤄진다.
주변 관광지로는 '광릉'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조선 제7대 세조(1417~1468)와 부인인 정희왕후 윤씨(1418~1483)의 능이다.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에 자리한다.
수목원은 1987년 4월 '광릉 수목원'이란 명칭으로 설립됐다가 1999년 5월 '국립'으로 승격해 오늘에 이른다.
수목원과 광릉은 행정 구역은 다르나, 실제로는 정말 지척이다. 흐르는 물을 벗 삼아 10분가량 걸으면 도착할 수 있다.
능 안 재실에서 홍살문을 거쳐 정자각까지 이어지는 길도 가을 공기를 마시면서 걷기에 좋다.
세조가 어린 조카(제6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끝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성공한 역적'인지, 유약해진 왕실을 지키기 위해 손에 피를 묻혀야 했던 '비운의 군주'인지를 생각하면서….
다음은 '고모 저수지'다. 수목원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다. '고모 호수공원' '고모리 저수지' 등으로도 불린다.
가을빛이 가득한 저수지와 수변 풍경을 만끽하면서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 있다.
주변으로 식당과 카페도 많아 쉬어가기에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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