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취업난·생활비 부담에 "독립 않고 같이 살기로"
경제적 부담 못 이겨 부모 품 돌아가는 '리터루족'도
긴 구직 기간·과도한 주거비·일자리 불안정 등 원인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박정빈 인턴기자 = #1. 직장인 유모(28)씨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약 2년의 자취생활을 접고 다시 본가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유씨는 "숨만 쉬어도 월세로 70만원이 빠져나가고 생활비까지 나간다. 지금 받는 돈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며 "부모님과 함께 살면 돈을 빨리 모을 수 있을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고 했다.
#2. 3년 차 직장인 이모(31)씨도 "남들은 독립을 안 한다고 볼지 몰라도 사실상 못 벗어나는 것"이라며 "보증금 이자와 월세를 내는 순간 생활 패턴부터 먹는 음식까지 모두 바꿔야 할 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20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사회·경제적으로 자립할 나이인 서른 전후의 청년들 중 독립하지 않고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사는 '캥거루족'이 절반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부모 돈으로 생활하는 '백수 캥거루'부터 수입이 있으면서도 부모 집을 떠나지 않는 '한집 캥거루'들까지 다양한 형태였다. 최근에는 독립했다가 경제적 부담에 못 이겨 다시 부모 품으로 돌아가는 '리터루족'(리턴+캥거루족)도 적지 않았다.
지난달 통계청은 '2022년 25~39세 청년의 배우자 유무별 사회·경제적 특성 분석'을 통해 미혼인 25~39세 청년 절반 이상(50.6%)은 캥거루족인 것으로 보고했다. 전년보다는 1.3%포인트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3년 차 직장인 안모(28)씨는 "지금도 집에 살면서 생활비 명목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있는데, 자취를 하게 되면 방세랑 관리비 등을 포함하면 그 두 배를 내야할 거 같아서 독립을 안 하고 있다"고 전했다.
퇴사 후 재취업을 준비 중인 김모(29)씨도 "월세를 내면 월급 중 4분의 1은 꼬박꼬박 매달 나간다. 적어도 5년 동안은 부모님과 함께 살며 결혼 자금이나 사회생활을 할 종잣돈을 모으고 싶다"고 털어놨다.
홀로서기를 미루는 자녀 때문에 부모들도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품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자식들이나 나갔다 되돌아오는 자식으로 인해 노후 대비는 뒷전이 된 지 오래다.
20대 후반 자녀 둘과 함께 사는 유모(59)씨는 "사회적 자립을 못 하고 있는 것이 답답하지만 자식인데 그래도 어쩌겠나"라며 "이제는 내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데 애들을 '부양'하는 동안에는 생각할 여유가 없을 것 같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노인 비중이 20%를 넘어선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되는 가운데 노후 준비가 미비한 5060세대의 삶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705만 명이 은퇴한 상황에서 단일세대로는 최대 규모인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 954만 명이 법정 은퇴 연령(60세)에 진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캥거루족의 증가의 원인으로 긴 구직기간을 비롯해 과도한 주거비용, 불안정한 일자리 등을 지적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캥거루족이 비율이 높은 한국 사회구조와 관련해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학교를 오래 다니는데, 취업난으로 인해 졸업 이후의 취업까지의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고 평가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도 "일자리를 갖더라도 결혼 시기가 늦어져 이 같은 현상이 강화되는 측면도 있다"며 "특히 서울이나 대도시는 주거비용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부모와 같이 사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캥거루족의 증가는 가족관계 형태의 변화를 동반한다. 이는 생활과 복지, 경제활동 등에 영향을 준다"면서 "가족 관계가 파편화하면서 생기는 나홀로족이나 반대로 가족화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제도, 복지 등의 보완이 정책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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